
< (왼쪽부터) 남영석 교수, 김준수 박사과정, 임성갑 교수, 강민정 박사과정 >
물방울이 더 잘 맺히고, 더 빨리 떨어지게 해 열전달 성능을 최대 5.5배 높이는 기술이 개발됐다. 발전소와 담수화 설비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전자기기의 냉각 성능을 개선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대학은 기계공학과 남영석 교수와 생명화학공학과 임성갑 교수 공동연구팀이 표면에 입히는 매우 얇은 고분자 코팅막의 두께와 구조를 조절해, 수증기가 물로 변할 때 물방울은 더 많이 생기고, 생긴 물방울은 더 빨리 떨어지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23일 밝혔다.

< 나노 고분자 코팅이 적용된 고효율 응축 구리관 개념도 >
수증기가 물로 변하는 ‘응축’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차가운 음료수 컵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발전소의 증기를 다시 물로 바꾸거나, 바닷물에서 민물을 얻고, 전자기기에서 발생한 열을 식히는 데 폭넓게 이용된다.
응축 과정에서는 표면에 생긴 물이 얼마나 빨리 빠져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일반 금속 표면에서는 작은 물방울들이 서로 합쳐져 얇은 물막을 만든다. 겨울철 옷을 여러 겹 입으면 체온이 빠져나가기 어려운 것처럼, 이 물막도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가로막는 ‘열저항’ 역할을 해 열전달 효율을 떨어뜨린다.
반대로 물이 작은 물방울 형태로 맺혔다가 계속 떨어져 나가면 새로운 표면이 반복해서 드러난다. 이렇게 물방울 형태로 응축되는 현상을 ‘적상응축’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물이 표면을 계속 덮고 있는 대신, 물방울이 생기고 떨어지는 과정이 빠르게 반복되는 것이다. 이 경우 열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기술에는 딜레마가 있었다. 물방울이 처음 만들어질 자리를 늘리기 위해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들면 물방울이 그 구조에 걸려 잘 떨어지지 않았다. 반대로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면 물방울은 잘 떨어지지만 새 물방울이 만들어질 자리가 줄어들었다. 씨앗을 심을 자리를 많이 만들면 수확한 열매를 꺼내기 어렵고, 꺼내기 쉽게 만들면 씨앗을 심을 자리가 부족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기존에는 고분자막의 ‘결함’으로 여겨졌던 나노 크기의 작은 알갱이(응집체)를 활용해 해결했다. 고분자막은 플라스틱과 비슷한 성질의 고분자 물질을 표면에 매우 얇게 입힌 코팅막이다.
연구팀은 기체 상태의 원료를 표면에 입혀 아주 얇은 고분자막을 만드는 ‘개시제를 이용한 화학 기상 증착법(iCVD)’을 활용했다. 고분자막을 얇게 만들자 표면에 나노 크기의 작은 알갱이가 촘촘하게 생겼고, 이들이 물방울이 처음 맺히는 ‘씨앗 자리’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얇은 고분자막에서는 두꺼운 막보다 물방울이 약 3배 많이 생겼다.
여기에 열처리를 더해 물방울이 표면에 달라붙는 힘도 줄였다. 덕분에 물방울이 크게 자라기 전에 쉽게 떨어질 수 있었다. 즉, 고분자막을 얇게 만들어 물방울이 생길 자리는 늘리고, 열처리로 생긴 물방울은 빨리 떨어지게 한 것이다. 물방울을 많이 만드는 것과 빨리 없애는 것을 동시에 해결한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물방울이 떨어진 자리에는 다시 새로운 물방울이 생긴다. 빈자리가 생기면 곧바로 다음 사람이 앉는 것처럼, 물방울이 생기고 떨어지는 과정이 빠르게 반복될수록 수증기를 물로 바꾸면서 열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연구팀은 실제 응축기에 많이 쓰이는 구리관에 이 고분자막을 입혀 성능을 확인했다. 그 결과 열을 전달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응축 열전달계수’가 최대 약 88 kW·m⁻²·K⁻¹를 기록했다. 이는 물막이 생기는 일반 구리 표면보다 열전달 성능이 최대 약 5.5배 높은 수준이다. 물을 잘 튕겨내는 기존 발수 코팅 표면과 비교해도 50% 이상 높은 성능을 보였다.
이번 연구는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거나 물을 잘 튕겨내는 데 집중했던 기존 방식과 달리, 표면의 작은 ‘결함’을 적극 활용했다. 그동안 없애야 할 것으로 여겼던 나노 크기의 작은 알갱이가 오히려 물방울이 잘 생기도록 돕는다는 점을 발견해 새로운 표면 설계에 활용했다.

< 고분자막 두께와 열처리에 따른 액적 생성 및 열전달 성능 >
향후 이 기술을 발전소나 산업용 열교환기에 적용하면 열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담수화·수분 포집 장치에서는 물을 더 효과적으로 모으고, 전자기기에서는 열을 빠르게 빼내 냉각 성능을 높이는 기술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남영석 교수는 “이번 연구는 기존에 결함으로 여겨졌던 나노 구조를 물방울이 잘 생기도록 돕는 요소로 활용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물방울의 생성과 제거를 각각 조절해 열전달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기술은 복잡한 모양의 표면에도 매우 얇고 균일하게 코팅할 수 있어 산업용 열교환기를 비롯한 다양한 에너지·환경 분야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기계공학과 김준수 연구원과 생명화학공학과 강민정 연구원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7월 16일 온라인 게재됐다.
※ 논문명: Rational design of polymer film morphology via structure–performance linkage for enhanced condensation performance,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5621-5
한편, 이번 연구는 중견연구사업(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중소기업기술혁신개발사업(중소벤처기업부·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딥사이언스 창업 활성화 지원사업(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학기술사업화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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