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속 ‘유전자 지도’ 한번에 해독...치매·암 연구 게임체인저
질병의 시작점은 단 한 개의 세포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개별 세포의 변화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데 한계가 있어, 수천~수만 개 세포의 평균값을 분석하다 보니 질병의 ‘초기 신호’를 정확히 포착하기 어려웠다. 우리 대학 연구진이 마치 구글어스로 지구를 확대하듯, 그 세포 속 유전 설계도를 입체적으로 동시에 해독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암과 치매, 파킨슨병 등 복잡 질환 연구의 판을 바꿀 성과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정인경 교수 연구팀이 미국 듀크대학교 야루이 디아오(Yarui Diao)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단일 세포에서 ▲유전자 발현(전사체) ▲후성유전체 ▲게놈 3차 구조를 동시에 분석하는 세계 최초의 초정밀 분자지도 해독 기술 ‘scHiCAR(에스씨하이카, single-cell Hi-C with assay for transposase-accessible chromatin and RNA sequencing)’를 개발했다고 4일 밝혔다.
세포의 상태를 결정하는 핵심은 결국 유전자의 작동 방식이다. 유전자는 단순히 켜지고 꺼지는 스위치가 아니다. 어떤 유전자가 실제로 작동하는지(전사체), 왜 작동하는지(후성유전체), 어떤 공간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지(게놈 3차 구조)가 함께 맞물려 세포의 운명을 결정한다. 기존 기술은 이 정보를 각각 다른 세포에서 따로 얻은 뒤 사후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미세한 변화가 왜곡되거나 누락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전사체, 후성유전체, 3차 게놈 구조 등 이 세 가지 유전 정보를 단일 세포에서 동시에 분석하는 통합 정밀 분석 기술인 ‘트라이모달 멀티오믹스(trimodal Trimodal Multi-omics)’ 기술을 구현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분석을 접목해 정확도와 재현성을 크게 높였다. 그 결과, 세포 내부의 유전 정보를 ‘한 장의 입체 지도’처럼 읽어내는 통합 분석 플랫폼을 완성했다.
특히 세포 하나당 분석 비용을 약 0.04달러(한화 약 50원)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생쥐 뇌 조직 내 160만 개 세포에 대한 고해상도 분자지도를 구축했다. 이는 질병 유전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구조 속에서 켜지고 꺼지는지를 세포 단위에서 정밀하게 규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해당 기술을 뇌 조직과 근육 재생 과정에 적용해 22개 주요 세포 유형의 서로 다른 유전자 작동 원리를 밝혀냈다. 특히 근육 줄기세포가 재생되는 과정에서 유전자의 입체 구조가 동적으로 변화하며 세포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을 단일 세포 수준에서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노화 및 난치 질환 치료 전략 개발의 핵심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인경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를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 세포 내부 유전체 설계도를 정밀하게 읽고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파킨슨병과 암 등 복잡 질환의 발생 기전을 밝히고 환자 맞춤형 신약 타깃을 발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양동찬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그리고 KAIST 김규광 박사가 주요 연구진으로 참여했으며,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 IF=46.9)’에 2월 19일 자로 게재됐다.
※ 논문명: Trimodal single-cell profiling of transcriptome, epigenome and 3D genome in complex tissues with scHiCAR, DOI: 10.1038/s41587-026-03013-7
한편, 이번 연구는 서경배과학재단과 삼성미래기술연구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 및 바이오의료기술개발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지방 세포 생성을 멈추는 '스위치' 발견
비만과 지방간, 인슐린 저항성 등 대사질환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지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근본적으로 조절할 방법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특히 지방세포는 한 번 형성되면 쉽게 줄어들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대학 연구진이 지방 형성을 막는 ‘스위치’가 존재함을 밝혀냈다. 이번 발견은 DNA 자체를 바꾸지 않고 유전자의 작동을 조절하는 ‘후성유전체 스위치’가 지방세포 생성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규명한 것으로, 향후 비만과 대사질환을 보다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 임대식 교수와 강주경 교수 연구팀은 히포(Hippo) 신호전달경로*의 핵심 조절 인자인 ‘얍/타즈(YAP/TAZ)’가 지방세포 분화과정**에서 후성유전체 수준의 ‘분화 억제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25일 밝혔다. 연구팀은 얍/타즈가 자신의 하위 표적인 ‘비글스리(VGLL3)’를 통해 지방세포 형성을 담당하는 유전자들의 작동을 광범위하게 억제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히포 신호전달경로: 세포가 언제 자라고, 언제 분열을 멈추고 분화할지를 조절하는 일종의 세포 운행 통제 시스템
**지방세포 분화과정: 지방 전구세포(또는 줄기세포)가 성숙한 지방세포로 변화하는 과정
세포 분화는 단순히 하나의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와 DNA 조절 부위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연구팀은 전구세포*가 지방세포로 분화하는 전 과정을 추적하며, 유전자 발현 변화와 후성유전체 변화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을 활용했다.
*전구세포: 어떤 세포가 될지 이미 방향이 정해진, 성장 중인 중간 단계 세포
그 결과, 얍/타즈(YAP/TAZ)가 활성화된 조건에서는 지방세포라고 확인해주는 정체성을 만드는 유전자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못하고, 피피에이알감마(PPARγ)*를 중심으로 한 지방세포 분화 네트워크 전반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피에이알감마(PPARγ): 몸속 에너지 저장과 사용을 조절하는 ‘대사 마스터 스위치’조절자
특히 연구팀은 지방조직 단일세포 분석을 통해, 얍/타즈(YAP/TAZ)의 새로운 표적 유전자로 비글스리(VGLL3)를 발굴했다.
기존에는 얍/타즈(YAP/TAZ)가 피피에이알감마(PPARγ)와 직접 결합해 그 기능을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비글스리(VGLL3)가 지방세포 유전자들의 DNA 조절 부위인 ‘인핸서’를 억제해 지방세포 분화 프로그램 전체를 간접적으로 제어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는 지방세포가 언제, 얼마나 강하게 만들어질지를 결정하는 핵심 타이밍 조절에 히포 신호전달 경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조직의 기능 이상은 비만, 인슐린 저항성, 지방간 등 다양한 대사질환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제시한 얍/타즈-비글스리-피피에이알감마(YAP/TAZ–VGLL3–PPARγ) 축의 조절 원리가 지방세포 형성과 기능 이상에 어떻게 관여하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향후 대사질환을 조절하거나 치료하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대식 교수는 “이번 연구는 지방세포 분화가 단순한 유전자 조절을 넘어, 후성유전체 수준에서 정교하게 제어된다는 점을 최초로 규명한 성과”라며, “지방세포의 정체성 변화 기전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고, 장기적으로는 대사질환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과 박사과정 설태준 학생과 강주경 박사가 공동 제 1 저자로 참여하여 세계적인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즈(Science Advances)에 1월 14일자로 출판되었다.
※ 논문명: YAP/TAZ-VGLL3 governs adipocyte fate via epigenetic reprogramming of PPARγ and its target enhancers, DOI:10.1126/sciadv.aea7235
한편, 이번 연구는 과기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리더연구자 지원사업, 해외우수과학자 유치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파킨슨병 발병 3차원 게놈 지도 최초 제시
파킨슨병은 60세 이상 인구의 1.2% 이상 발병하는 흔한 퇴행성 뇌 질환으로 급격한 인구 고령화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어, 2040년 약 1,420만 명의 환자가 발병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 파킨슨병의 다양한 발병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정상적으로 발생하는 후성 유전학적 특징들이 파킨슨병 발병에 관여하는 것을 최초로 확인되어 화제다.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 정인경 교수 연구팀이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 산하 국립노화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ging, NIA) 엘리에자 매슬리아(Eliezer Masliah) 교수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전 세계 최초로 파킨슨병 발병 뇌 조직의 단일세포 3차원 후성유전체 지도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656개의 파킨슨병 연관 신규 유전자들을 제시했다고 8일 밝혔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최신 개발된 단일세포 유전체 기술과 3차원 후성 유전체 기술을 접목하여 신경세포 뿐 아니라 뇌 환경 유지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경교세포 (희소돌기아교세포, 미세아교세포 등)의 후성유전적 변화들이 3차원 게놈 구조를 통해 파킨슨병 발병에 관여하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후성유전학적 특징들은 파킨슨병의 원인 또는 진행에 관여하는 유전자 발현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본 연구 결과는 차후 진단과 치료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연구팀은 전했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생명과학과 이정운 박사는 단일세포 수준에서 환자 뇌조직을 분석한 결과 기존의 신경세포에 국한된 연구에서 한발 나아가, 신경교세포 또한 파킨슨병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단서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견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벤시스(Science Advances, IF=14.14)'에 4월 14일 게재됐다. (논문명 : Characterization of altered molecular mechanisms in Parkinson’s disease through cell type-resolved multi-omics analyses)
교신 저자인 정인경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퇴행성 뇌 질환의 표적 발굴에 있어 3차원 후성유전체 지도 작성의 중요성을 보였기에 차후 다양한 복합유전질환 규명에도 중요하게 활용될 것이다ˮ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서경배과학재단,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