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속 ‘유전자 지도’ 한번에 해독...치매·암 연구 게임체인저
질병의 시작점은 단 한 개의 세포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개별 세포의 변화를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데 한계가 있어, 수천~수만 개 세포의 평균값을 분석하다 보니 질병의 ‘초기 신호’를 정확히 포착하기 어려웠다. 우리 대학 연구진이 마치 구글어스로 지구를 확대하듯, 그 세포 속 유전 설계도를 입체적으로 동시에 해독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암과 치매, 파킨슨병 등 복잡 질환 연구의 판을 바꿀 성과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정인경 교수 연구팀이 미국 듀크대학교 야루이 디아오(Yarui Diao)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단일 세포에서 ▲유전자 발현(전사체) ▲후성유전체 ▲게놈 3차 구조를 동시에 분석하는 세계 최초의 초정밀 분자지도 해독 기술 ‘scHiCAR(에스씨하이카, single-cell Hi-C with assay for transposase-accessible chromatin and RNA sequencing)’를 개발했다고 4일 밝혔다.
세포의 상태를 결정하는 핵심은 결국 유전자의 작동 방식이다. 유전자는 단순히 켜지고 꺼지는 스위치가 아니다. 어떤 유전자가 실제로 작동하는지(전사체), 왜 작동하는지(후성유전체), 어떤 공간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지(게놈 3차 구조)가 함께 맞물려 세포의 운명을 결정한다. 기존 기술은 이 정보를 각각 다른 세포에서 따로 얻은 뒤 사후에 맞춰야 했기 때문에, 미세한 변화가 왜곡되거나 누락될 수 있었다.
연구팀은 전사체, 후성유전체, 3차 게놈 구조 등 이 세 가지 유전 정보를 단일 세포에서 동시에 분석하는 통합 정밀 분석 기술인 ‘트라이모달 멀티오믹스(trimodal Trimodal Multi-omics)’ 기술을 구현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분석을 접목해 정확도와 재현성을 크게 높였다. 그 결과, 세포 내부의 유전 정보를 ‘한 장의 입체 지도’처럼 읽어내는 통합 분석 플랫폼을 완성했다.
특히 세포 하나당 분석 비용을 약 0.04달러(한화 약 50원) 수준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생쥐 뇌 조직 내 160만 개 세포에 대한 고해상도 분자지도를 구축했다. 이는 질병 유전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구조 속에서 켜지고 꺼지는지를 세포 단위에서 정밀하게 규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해당 기술을 뇌 조직과 근육 재생 과정에 적용해 22개 주요 세포 유형의 서로 다른 유전자 작동 원리를 밝혀냈다. 특히 근육 줄기세포가 재생되는 과정에서 유전자의 입체 구조가 동적으로 변화하며 세포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을 단일 세포 수준에서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노화 및 난치 질환 치료 전략 개발의 핵심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인경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를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 세포 내부 유전체 설계도를 정밀하게 읽고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파킨슨병과 암 등 복잡 질환의 발생 기전을 밝히고 환자 맞춤형 신약 타깃을 발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양동찬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그리고 KAIST 김규광 박사가 주요 연구진으로 참여했으며,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Nature Biotechnology, IF=46.9)’에 2월 19일 자로 게재됐다.
※ 논문명: Trimodal single-cell profiling of transcriptome, epigenome and 3D genome in complex tissues with scHiCAR, DOI: 10.1038/s41587-026-03013-7
한편, 이번 연구는 서경배과학재단과 삼성미래기술연구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기초연구사업 및 바이오의료기술개발 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잡초의 반란’...까마중을 의약품 원료 공장으로 바꾸다
검은 열매 모양이 까마귀 눈을 닮았다고 해서 ‘까마중’이라는 불리는 길가나 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가 현대 의학의 필수품인 호르몬제 원료를 생산하는 ‘보물 창고’로 탈바꿈했다. 국내 연구진이 유전자 교정 기술을 활용해 까마중의 대사 경로를 재설계함으로써, 병원에서 널리 쓰이는 스테로이드계 의약품의 핵심 원료를 고효율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우리 대학은 검은 열매 모양이 까마귀 눈을 닮았다고 해서 ‘까마중’이라는 불리는 길가나 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가 현대 의학의 필수품인 호르몬제 원료를 생산하는 ‘보물 창고’로 탈바꿈했다. 국내 연구진이 유전자 교정 기술을 활용해 까마중의 대사 경로를 재설계함으로써, 병원에서 널리 쓰이는 스테로이드계 의약품의 핵심 원료를 고효율로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디오스게닌은 현대 약학에서 핵심적인 출발 물질이다. 소염제와 가려움증 치료제 등 일상에서 널리 사용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제의 합성 원료로 활용된다. 현재는 주로 ‘마(Dioscorea)’의 뿌리에서 추출하지만, 마는 수확까지 수년이 소요되고 유전자 조작이 어려워 생산량 확대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한 세대가 약 3개월로 짧고 유전자 조절이 용이한 ‘까마중(Solanum nigrum)’에 주목했다. 까마중은 원래 독성 스테로이드 성분인 ‘솔라소딘(Solasodine)’을 생성하는데, 연구진은 이 물질이 디오스게닌과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CRISPR-Cas9) 기술을 활용해 까마중의 특정 유전자인 ‘게임4(SnGAME4)’를 교정했다. 이를 통해 독성 성분으로 이어지는 대사 경로를 차단하고, 대신 디오스게닌이 생성되도록 대사 흐름을 전환했다. 또한 잎 조직에서 반응을 조절하는 ‘게임25(SnGAME25)’ 까마중 유전자를 추가로 억제해 열매와 잎 모두에서 디오스게닌 축적량을 극대화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까마중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효소인 베타-글루코시다아제(SaF26G)를 활용해 성분을 추출이 용이한 형태로 전환하는 ‘자연 발효’ 공정을 접목했다. 그 결과, 까마중의 녹색 열매에서 기존 산업용 원료 식물인 마와 유사한 수준의 디오스게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더해 경상국립대 연구팀이 개발한 ‘열매 수확량 증대 기술(S 유전자* 변이)’을 적용해 식물 한 개체당 열매 생산량을 대폭 향상시켰다. 이를 통해 동일 면적에서 보다 많은 의약품 원료를 생산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도 마련했다.
*S 유전자 변이: S유전자(compound inflorescence)는 식물의 꽃대 형성을 조절하는 유전자로, 발현양 조절을 통해 한 개체당 열매 생산량을 늘릴 수 있음
김상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잡초가 지닌 고유한 대사 경로를 정교하게 재설계해 고부가가치 약용 성분을 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향후 스테로이드 의약품 원료를 보다 안정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임종부 박사와 경상국립대 김근화 박사, 허정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성과는 식물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플랜트 바이오테크놀로지 저널(Plant Biotechnology Journal) 1월 16일 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논문명: Rewiring Steroidal Metabolic Pathways for Diosgenin Production in Solanum nigrum, DOI: 10.1111/pbi.70551
한편, 본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합성생물학 핵심기술개발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및 농촌진흥청 차세대농작물신육종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70년 만에 토종 ‘광대싸리’ 항암물질 생성 비밀 밝혀
식물 유래 약 성분은 많지만, 식물이 이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우리 대학 연구진이 70년 만에 토종 약용식물 광대싸리에서 항암 성분인 세큐리닌이 생성되는 전 과정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번 성과로 실험실과 미생물 공장에서 항암 물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김상규 교수 연구팀과 화학과 한순규 교수 연구팀이 우리나라 자생 식물인 광대싸리에서 항암 효과로 알려진 세큐리닌(securinine) 계열 물질이 만들어지는 핵심 과정을 규명했다고 30일 밝혔다.
광대싸리는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관목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잎과 뿌리를 약재로 사용해 왔다. 이 식물에는 세큐리닌을 비롯한 다양한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어 신약 개발 가능성이 높은 약용식물로 주목받아 왔다.
세큐리닌은 1956년 광대싸리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130종이 넘는 관련 물질이 보고됐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항암 효과를 보이거나, 뇌로 잘 전달돼 신경 재생을 돕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물질들이 식물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지난 70년간 밝혀지지 않은 난제였다.
생명체 안에서 천연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합성’이라고 한다. 이는 최종 물질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중간 단계를 거치고, 어떤 효소가 작용하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모르핀, 카페인, 니코틴 등 식물이 만들어내는 약효가 강한 천연 성분인 알칼로이드는 구조가 매우 복잡해 생합성 과정을 규명하기 특히 어려운 물질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화학과 생명과학의 협력이 핵심 역할을 했다. 세큐리닌 계열 물질의 화학적 합성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한순규 교수 연구팀과, 식물 유전체 분석과 단일세포 분석에 강점을 가진 김상규 교수 연구팀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김상규 교수 연구팀은 성남시 불곡산 일대의 ‘KAIST 생태림’에서 광대싸리를 확보해 연구 시료를 만들고, 식물의 유전체를 정밀 분석했다. 특히 세큐리닌 생성이 활발한 잎 조직을 대상으로 단일세포 전사체 분석을 수행해, 어떤 세포에서 어떤 유전자가 작동하는지를 세밀하게 추적했다.
한편 한순규 교수 연구팀은 세큐리닌이 만들어지기 바로 전 단계의 물질로 ‘비로신 B’를 찾아내고, 이를 실험실에서 직접 만들어 그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식물 속 효소인 ‘황산전이효소’가 비로신 B를 항암 성분 세큐리닌으로 바꾸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황산전이효소가 단순히 화학 성분을 붙이는 보조 역할이 아니라, 알칼로이드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준 연구 결과다.
김상규 교수와 한순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나라 자생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고부가가치 천연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밝힌 것”이라며 “앞으로 미생물이나 세포를 이용해 항암 물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다양한 의약학적 응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정성준 박사후연구원, 강규민 박사후연구원, 김태인 석박통합과정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성과는 국제 저명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IF 15.7)에 1월 23일 게재됐다.
※ 논문명: Chemically guided single-cell transcriptomics reveals sulfotransferase-mediated scaffold remodeling in securinine biosynthesis, DOI: doi.org/10.1038/s41467-026-68816-3
이번 연구는 과기부 한국연구재단의 중견 합성생물학, 농촌진흥청 NBT사업단의 차세대농작물신육종기술개발, KAIST 생태연구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지방 세포 생성을 멈추는 '스위치' 발견
비만과 지방간, 인슐린 저항성 등 대사질환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지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근본적으로 조절할 방법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특히 지방세포는 한 번 형성되면 쉽게 줄어들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 대학 연구진이 지방 형성을 막는 ‘스위치’가 존재함을 밝혀냈다. 이번 발견은 DNA 자체를 바꾸지 않고 유전자의 작동을 조절하는 ‘후성유전체 스위치’가 지방세포 생성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규명한 것으로, 향후 비만과 대사질환을 보다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 임대식 교수와 강주경 교수 연구팀은 히포(Hippo) 신호전달경로*의 핵심 조절 인자인 ‘얍/타즈(YAP/TAZ)’가 지방세포 분화과정**에서 후성유전체 수준의 ‘분화 억제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25일 밝혔다. 연구팀은 얍/타즈가 자신의 하위 표적인 ‘비글스리(VGLL3)’를 통해 지방세포 형성을 담당하는 유전자들의 작동을 광범위하게 억제하는 새로운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히포 신호전달경로: 세포가 언제 자라고, 언제 분열을 멈추고 분화할지를 조절하는 일종의 세포 운행 통제 시스템
**지방세포 분화과정: 지방 전구세포(또는 줄기세포)가 성숙한 지방세포로 변화하는 과정
세포 분화는 단순히 하나의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와 DNA 조절 부위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연구팀은 전구세포*가 지방세포로 분화하는 전 과정을 추적하며, 유전자 발현 변화와 후성유전체 변화를 동시에 분석할 수 있는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술을 활용했다.
*전구세포: 어떤 세포가 될지 이미 방향이 정해진, 성장 중인 중간 단계 세포
그 결과, 얍/타즈(YAP/TAZ)가 활성화된 조건에서는 지방세포라고 확인해주는 정체성을 만드는 유전자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못하고, 피피에이알감마(PPARγ)*를 중심으로 한 지방세포 분화 네트워크 전반이 억제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피에이알감마(PPARγ): 몸속 에너지 저장과 사용을 조절하는 ‘대사 마스터 스위치’조절자
특히 연구팀은 지방조직 단일세포 분석을 통해, 얍/타즈(YAP/TAZ)의 새로운 표적 유전자로 비글스리(VGLL3)를 발굴했다.
기존에는 얍/타즈(YAP/TAZ)가 피피에이알감마(PPARγ)와 직접 결합해 그 기능을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비글스리(VGLL3)가 지방세포 유전자들의 DNA 조절 부위인 ‘인핸서’를 억제해 지방세포 분화 프로그램 전체를 간접적으로 제어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는 지방세포가 언제, 얼마나 강하게 만들어질지를 결정하는 핵심 타이밍 조절에 히포 신호전달 경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조직의 기능 이상은 비만, 인슐린 저항성, 지방간 등 다양한 대사질환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제시한 얍/타즈-비글스리-피피에이알감마(YAP/TAZ–VGLL3–PPARγ) 축의 조절 원리가 지방세포 형성과 기능 이상에 어떻게 관여하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향후 대사질환을 조절하거나 치료하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대식 교수는 “이번 연구는 지방세포 분화가 단순한 유전자 조절을 넘어, 후성유전체 수준에서 정교하게 제어된다는 점을 최초로 규명한 성과”라며, “지방세포의 정체성 변화 기전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고, 장기적으로는 대사질환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과 박사과정 설태준 학생과 강주경 박사가 공동 제 1 저자로 참여하여 세계적인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즈(Science Advances)에 1월 14일자로 출판되었다.
※ 논문명: YAP/TAZ-VGLL3 governs adipocyte fate via epigenetic reprogramming of PPARγ and its target enhancers, DOI:10.1126/sciadv.aea7235
한편, 이번 연구는 과기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리더연구자 지원사업, 해외우수과학자 유치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AI가 포착한 우울증
주요 우울 장애 등 정신건강 질환은 주관적 설문과 면담으로 진단한다. 복합적이고 모호한 ‘우울감’은 우울증 진단의 가장 큰 한계로 꼽혀왔다. 국내 연구진이 AI로 일상행동을 분석해 우울증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치료 효과를 평가하는 기술을 개발하며, 정신질환 진단과 치료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허원도 석좌교수 연구팀이 동물 모델의 일상적인 행동 패턴을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일상행동 속에서 성별과 중증도에 따른 우울증 증상을 탐지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13일 밝혔다.
연구팀은 우울증 환자의 팔다리 움직임, 자세, 표정 등 신체 운동 양상이 일반인과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감정과 정서 상태가 운동 능력으로 드러나는 현상인 ‘정신운동(psychomotor)’을 정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연구팀은 실험동물의 자세와 움직임을 3차원으로 분석해 우울 상태에 따른 미세한 행동 변화를 자동으로 포착할 수 있는 AI 플랫폼‘클로저(CLOSER, Contrastive Learning-based Observer-free analysis of Spontaneous behavior for Ethogram Representation)’를 개발했다.
클로저는 인공지능 기법인 (contrastive learning) 알고리즘을 활용해 행동을 아주 작은 단위로 나눠 분석한다. 이를 통해 사람의 눈으로는 알아차리기 어려운 미세한 행동 변화까지 정확하게 구분해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우울증과 가장 유사한 만성 예측 불가능 스트레스(CUS, Chronic Unpredictable Stress) 마우스 모델을 만들고, 행동만으로 일상 속 우울 상태를 구별할 수 있는지를 검증했다. 그 결과, 클로저는 성별과 증상의 심한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우울 상태를 정확히 구분하는 데 성공했다.
사후 분석 결과, 스트레스는 운동 능력 자체보다는 행동의 빈도와 행동 흐름을 바꾸는 데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우울증 모델에서 스트레스에 의해 변화한 행동 음절은 성별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예를 들어, 수컷 생쥐에서는 주변을 탐색하거나 회전하는 행동이 감소한 반면, 암컷 생쥐에서는 이러한 행동이 오히려 증가했다. 이러한 일상행동 변화는 스트레스 노출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두드러졌다.
또한 연구팀은 우울증의 발생 원인이 행동 패턴에 반영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염증 기반 우울증 모델과 스트레스 호르몬 기반 우울증 모델을 추가로 분석했다.
그 결과, 지속적인 스트레스나 염증으로 우울 상태를 만든 경우에는 일상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지만, 스트레스 호르몬(콜티코스테론)만 투여한 경우에는 행동 변화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일상적인 행동 관찰만으로도 우울증의 원인이나 성별에 따라 서로 다른 상태를 구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연구팀은 실제로 우울증 환자 치료에 사용되거나 임상시험 중인 항우울제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우울증 증상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우울증 모델에 항우울제를 투여한 결과, 스트레스로 인해 변화했던 행동 음절(기본적인 행동 단위)과 행동 문법(행동의 흐름과 패턴)이 부분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항우울제마다 사람의 행동을 회복시키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행동만 살펴봐도 어떤 약이 더 잘 듣는지 구분할 수 있는 ‘행동 지문(behavioral fingerprint)’을 찾아냈다. 이는 앞으로 사람마다 행동 변화를 분석해 가장 잘 맞는 항우울제를 골라주는 맞춤 치료로 이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허원도 석좌교수는 “이번 연구는 인공지능 기반 일상행동 분석 플랫폼을 우울증 진단에 접목해, 우울장애의 맞춤형 진단과 치료 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전임상 프레임워크를 세계 최초로 구현한 성과”라며, “향후 정신질환 환자 맞춤형 치료제 개발과 정밀의료로 이어질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KAIST 생명과학과 오현식 박사과정이 제 1저자로 주도한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2025년 12월 30일 게재됐다.
※논문명: AI-driven decoding of naturalistic behaviors enables tailored detection of depressive-like behavior in mice,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5-67559-x
한편, 본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계도전 R&D프로젝트,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 (중견연구),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부성호 박사, ‘제5회 암젠한림생명공학상’ 박사후연구원 부문 수상
우리 대학 AI-혁신신약 연구단 부성호 박사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주최하는 '제5회 암젠한림생명공학상' 박사후연구원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지난 21일 한림원회관에서 개최됐다.
암젠한림생명공학상 박사후연구원 부문은 국내 신진 연구자 중 탁월한 연구성과를 보인 2인을 선정하며, 특히 세계적 학술지에 주목받는 제1저자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를 중심으로 수여된다.
부성호 박사는 원형 RNA가 세포 내에서 mRNA의 안정성(분해되지 않고 유지되는 정도)을 조절하는 새로운 분자적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이를 기반으로 특정 mRNA만 골라 선택적으로 분해할 수 있는 인공 원형 RNA를 개발했으며,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RNA 플랫폼 기술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연구는 차세대 RNA 기반 치료 기술로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그는 RNA 구조 설계, 기능 분석, 치료 응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으며 KAIST의 생명과학 및 바이오의공학 분야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암젠한림생명공학상은 생명과학·생명공학 분야에서 우수한 젊은 연구자를 발굴하기 위해 암젠코리아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2021년 공동 제정한 상으로, 올해로 5회를 맞았다. 박사후연구원 부문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1,000만 원이 수여된다.
부성호 박사는 “많은 도움을 주신 교수님과 동료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학문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연구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암 전이‘세포 이동의 비밀’풀었다
우리 몸에 생긴 암세포가 다른 부위로 퍼지는 암 전이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면역세포가 이동하는 과정 등 세포의 이동은 생명현상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그동안 세포가 외부 자극 없이 스스로 이동 방향을 결정하는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 대학과 국제 공동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세포가 스스로 방향을 정해 움직이는 원리를 규명, 향후 암 전이와 면역 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새로운 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시했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허원도 석좌교수 연구팀이 바이오및뇌공학과 조광현 석좌교수 연구팀, 미국 존스홉킨스대 이갑상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세포가 외부의 신호 없이도 스스로 이동 방향을 결정하는 ‘자율주행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10일 밝혔다.
연구팀은 살아있는 세포 안에서 단백질들이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징 기술 ‘INSPECT(INtracellular Separation of Protein Engineered Condensation Technique)’를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이용해 세포가 스스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정하는 내부 프로그램의 원리를 밝혀냈다.
연구팀은 세포 이동을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인 Rho 계열 단백질(Rac1, Cdc42, RhoA)의 작동 방식을 새롭게 분석했다. 그 결과, 이 단백질들이 기존에 알려진 이론인 단순히 세포의 앞뒤를 나누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백질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세포가 직진할지, 방향을 바꿀지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INSPECT 기술은 단백질이 서로 붙을 때 서로 잘 섞이지 않고 구분된 영역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상분리(phase separation)’현상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기술로, 세포 속에서 단백질들이 실제로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형광 신호로 직접 볼 수 있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단백질 페리틴(ferritin)과 형광단백질 DsRed를 활용해, 단백질들이 서로 결합할 때 작은 방울처럼 뭉친 덩어리인 ‘응집체(condensate)’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이 기술로 연구팀은 15종의 Rho 단백질과 19종의 결합 단백질을 조합해 총 285쌍의 상호작용을 분석했고, 그중 139쌍에서 실제 결합이 일어남을 확인했다. 특히, Cdc42–FMNL 단백질 조합은 세포의 ‘직진’을, Rac1–ROCK 단백질 조합은 세포의 ‘방향 전환’을 담당하는 핵심 회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세포의 방향 조절에 중요한 단백질 Rac1의 일부(37번째 아미노산)를 살짝 바꿔서, 그 단백질이 ‘핸들 역할’을 하는 ROCK 단백질과 잘 붙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세포는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계속 직선으로만 이동했다.
반면 정상 세포에서는 Rac1과 ROCK이 잘 결합해서 세포 앞부분에 ‘아크 스트레스 섬유(arc stress fiber)’라는 구조가 생기고, 이 섬유는 세포가 방향을 바꿀 때 직각에 가까운 방향 전환이 되도록 했다.
또한 세포가 붙어 있는 환경을 변화시킨 실험에서, 정상 세포는 주변 환경에 따라 이동 속도가 달라졌지만, Rac1F37W 세포(핸들이 고장난 세포)는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속도는 항상 똑같았다. 이는 Rac–ROCK 단백질 축이 세포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세밀하게 조절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허원도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 이동이 무작위적인 운동이 아니라, Rho 신호전달 단백질과 세포 이동 관련 단백질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내재적 프로그램에 의해 정밀하게 제어된다는 사실을 규명한 것”이라며, “새롭게 개발한 INSPECT 기술은 세포 내 단백질 상호작용을 시각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암 전이와 신경세포 이동 등 다양한 생명현상과 질병의 분자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폭넓게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 이희영 박사, 이상규 박사(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소속), 서예지 박사(현재 (주)휴룩스 소속), 김동산 박사(현재 LIBD 소속)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10월 31일 게재되었다.
※논문명: A Rho GTPase-effector ensemble governs cell migration behavior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5-64635-0
이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과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생명과학과 이흥규 교수, 대한면역학회 학술대상 수상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 이흥규 교수가 대한면역학회 주최 KAI2025 국제학술대회에서 학술대상(Grand Achievement Award)을 수상했다.
이흥규 교수는 치료가 어려운 뇌종양의 면역세포 작용 기전을 규명하고, 면역관문억제제의 치료 효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면역 타깃 전략을 제시해 왔다. 특히, 식이 변화에 따른 장내 미생물 구성의 변화가 뇌종양의 면역 조절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여, 장–면역–뇌(Gut–Immune–Brain) 축(axis)이라는 새로운 개념적 기전을 제시함으로써 국내외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이 교수는 면역관문치료제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면역세포 조절 메커니즘을 밝혀냄으로써, 차세대 뇌종양 면역치료제 개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교수는 이번 학술대상 상금 3천만 원 전액을 대한면역학회에 기부하며, 이를 면역학 분야 우수 박사학위논문상 신설에 사용해 학문 후속세대 양성에 기여할 뜻을 밝혔다.
이흥규 교수는 수상 소감에서 “이번 수상은 저 개인의 성취라기보다 함께 연구해 온 학생들과 동료 연구자들이 만들어낸 결실”이라며 “기초면역학의 발견이 환자 치료로 이어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변함없이 도전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상금은 미래 면역학을 이끌 젊은 연구자들의 성장을 위해 쓰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대한면역학회 학술대상은 면역학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둔 연구자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기조강연 및 시상식은 11월 1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KAI2025 국제학술대회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희귀병과 치매가 닯았다’KAIST, 헌팅턴병 원인 단백질 새 기능 규명
전 NBC 뉴스 기자 찰스 서빈(Charles Sabine)과 미국의 전설적 포크 가수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공통점은 희귀 유전성 질환인 헌팅턴병을 앓았다는 점이다. 헌팅턴병은 근육 조정 능력 상실, 인지 기능 저하, 정신적 문제를 동반하는 대표적인 신경계 퇴행성 질환이다. 국내외 연구진은 이 병의 원인 단백질인 헌팅틴 단백질이 변형될 뿐 아니라, 세포 골격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규명했다. 이번 발견은 헌팅턴병의 발병 원인 이해를 넓히고, 세포 골격 이상이 관여하는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근위축증 등 다른 퇴행성 질환 연구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송지준 교수 연구팀이 오스트리아 과학기술원(ISTA), 프랑스 소르본느대/파리 뇌연구원(Paris Brain Institute), 스위스 연방공대(EPFL) 등과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과 세포생물학적 기법을 통해 헌팅틴 단백질이 세포골격 미세섬유(F-actin)를 다발 형태로 배열하는 구조적 원리를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그동안 헌팅틴 단백질은 소포 운반이나 미세소관 기반 수송에 관여하는 등 세포골격을 ‘쓰는’ 역할만 한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연구팀이 헌팅틴 단백질이 세포골격 자체를 물리적으로 조직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헌팅틴 단백질의 새로운 역할을 분자 수준에서 세계 최초로 증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팀은 헌팅틴 단백질이 세포골격 미세섬유(F-actin)에 직접 결합하고, 두 개의 헌팅틴 단백질이 짝을 이루면서 약 20나노미터 간격으로 세포골격을 다발 형태로 가지런히 묶어준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형성된 세포골격 다발은 신경세포 간 연결망 발달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실제로 헌팅틴 단백질이 결핍된 신경세포에서는 신경세포의 구조적 발달이 저해되는 현상이 관찰됐다.
제1 저자인 KAIST 김재성 박사과정생은 “이번 연구를 통해,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불치병인 헌팅턴병 원인 단백질의 작용 기전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라고 말했다.
KAIST 생명과학과 송지준 교수는 “이번 성과는 헌팅턴병 발병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뿐 아니라, 세포골격 관련 질환 연구에도 파급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며, “세포 분열, 이동, 기계적 신호 전달 등 다양한 생명 현상에서 헌팅틴 단백질의 역할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김재성 박사과정생·김형주 박사(현 하버드대), 파리 뇌연구원 헤미 카펜티어(Remi Carpentier) 연구원, 마리아 크리스티나 가피치(Mariacristina Capizzi) 연구원 등이 제1 저자로 참여하여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자매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9월 19일 자에 출판됐다.
※논문명: Structure of the Huntingtin F-actin complex reveals its role in cytoskeleton organization,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w4124
※공동 교신저자: KAIST 송지준 교수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ISTA 플로리안 슈어(Florian Schur) 교수, 프랑스 소르본대/파리 뇌연구원 산드린 훔베르(Sandrine Humbert) 교수
한편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글로벌연구협력지원사업(한-스위스 바이오헬스 국제공동연구) 및 한-오스트리아 협력기반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치매 등 비밀 밝힐 뇌 면역 유전자 규명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유전자 차이가 어릴 때 뇌가 자라나는 과정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서 치매 등 뇌 질환이 생길 때는 왜 어떤 사람이 더 잘 걸리는지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국내 연구진이 최근 뇌 속 별아교세포가 면역 반응을 켜고 끄는 스위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 스위치를 조절하는 핵심유전자를 알아내고 성인이 된 후 뇌 질환에 대한 개인의 취약성을 결정한다는 점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향후 알츠하이머병의 퇴행성뇌질환을 포함한 다양한 뇌 면역 반응의 원인 규명과 치료 전략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정인경 교수와 기초과학연구원(원장 노도영, IBS) 혈관 연구단 정원석 부연구단장(겸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공동연구팀이 별아교세포(astrocyte) 발달 과정에서 특정 유전자가 성인기 뇌 면역 반응 조절에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팀은 쥐 모델을 활용해 뇌·척수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별아교세포의 발달 시기별 유전자 조절 프로그램을 정밀 분석한 결과, ‘NR3C1(Glucocorticoid Receptor)’ 유전자가 출생 직후 발달 단계에서 장기적 면역 반응 억제의 핵심 조절자임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최신 ‘3차원 후성유전체 분석 기술(DNA에 유전정보를 커짐·꺼짐분석 기술)’을 적용해 별아교세포 발달 과정에서의 전사체, 염색질 접근성, ‘3차원 게놈 상호작용(DNA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접히고 서로 만나는지를 보는 기술)’을 통합 분석했다.
그 결과, 별아교세포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55개의 중요한 유전자 조절 단백질(전사인자)을 찾아냈다. 그중에서도 NR3C1이라는 유전자가 아기 뇌가 처음 발달할 때 “가장 중요한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유전자가 없다고 해서 어릴 때 뇌 발달이 크게 망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 뇌에 자가면역성 질환(몸의 면역체계가 자기 뇌를 공격하는 병)을 일으키면, NR3C1이 없는 경우 뇌가 과도하게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병이 훨씬 심해졌다.
즉, NR3C1은 아기 뇌에서 “면역 스위치를 미리 켜둘 준비를 하는 엔진 예열 버튼”인 ‘후성유전적 프라이밍* 제어 역할을 하며, 이 덕분에 성인이 된 뒤 뇌가 과도한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지켜준다는 것을 알아냈다.
*후성유전적 프라이밍(epigenetic priming)유전자가 당장 발현되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 즉시 켜질 수 있게 스위치를 미리 준비해 두는 과정
정원석 IBS 부연구단장(KAIST 생명과학과 교수)은 “별아교세포의 면역 기능이 후성유전적 기억에 의해 조절된다는 사실을 처음 규명했다”며, “향후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 질환의 원인 규명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KAIST 생명과학과 정인경 교수는 “이번 연구는 별아교세포 발달의 특정 시기(시간적 조절 창, window of susceptibility)가 성인기와 노인기 뇌 질환의 취약성을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게놈 3차원 구조 기반 연구가 다발성경화증(MS) 등 면역성 뇌 질환의 새로운 발병 원리 이해와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KAIST 생명과학과 박성완 박사와 박현지 박사과정 학생이 제 1저자로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IF 15.7) 9월 22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논문명: NR3C1-mediated epigenetic regulation suppresses astrocytic immune responses in mice, DOI: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5-64088-5
또한 저널은 9월 17일, 해당 연구를 소개한 해설 글을 게재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5-64102-w
한편 이번 연구는 서경배과학재단,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IBS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AI와 뇌신호 빛 제어로 파킨슨병 조기진단·치료법 제시
모하마드 알리, 마이클 J. 폭스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 파킨슨병으로 오랜 시간 투병해 왔다. 이 병은 떨림, 강직, 서동, 자세 불안정 등 복합적인 운동 증상이 나타나지만, 기존 검사법으로는 발병 초기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기 어렵고, 뇌 신호 조절을 겨냥한 약물 역시 임상에서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최근 한국 연구진이 AI와 광유전학을 융합한 기술을 통해 파킨슨병의 정밀 진단과 치료 평가 도구로 활용 가능성을 입증하고, 차세대 맞춤형 치료제 개발 전략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 허원도 석좌교수 연구팀이 뇌인지과학과 김대수 교수(생명과학기술대학 학장) 연구팀,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 이창준 단장(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연구팀과 함께 인공지능(AI) 분석과 광유전학(optogenetics)을 결합해 파킨슨병 동물 모델에서 조기·정밀 진단과 치료 가능성을 동시에 입증하는 전임상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고 22일 밝혔다.
연구팀은 두 단계의 중증도를 가진 파킨슨병 생쥐 모델(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 이상으로 파킨슨병을 유발한 실험용 수컷 생쥐로, 사람의 파킨슨병을 모사하여 진단·치료 연구에 활용되는 표준 모델)을 구축하고, 뇌인지과학과 김대수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인공지능 기반 3D 자세 추정 기술을 행동 분석에 도입했다.
연구팀은 파킨슨병 생쥐의 걸음걸이, 손발 움직임, 떨림 같은 340여 가지 행동 신호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하나의 점수(파킨슨 행동지수)로 만들었습니다. 이 지수를 통해 파킨슨병을 발병 초기부터 기존 검사보다 더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분석 결과, 파킨슨 행동지수는 질환 유도 2주 시점부터 대조군 대비 유의한 차이를 보였으며, 기존 운동능력 검사보다 더 민감하게 질환 정도를 판별했다. 예를 들어 보폭 변화, 손발 움직임 비대칭, 흉부 떨림 같은 행동이 파킨슨병 진단의 핵심 요인임을 밝혔다. 따라서 상위 20개 행동 표지에는 손·발 비대칭, 보폭·자세 변화, 흉부 고빈도 성분 증가 등이 포함됐다.
이러한 행동 지표가 단순히 운동 기능 저하를 나타 내는 것인지, 파킨슨병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변화인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IBS 이창준 단장팀과 함께 루게릭병 생쥐 모델에도 같은 분석을 적용했다. 파킨슨병과 루게릭병(ALS) 모두 운동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기에 단순히 운동이 나빠진 것 때문이라면 두 질환 모두에서 높은 파킨슨 행동지수가 나와야 한다.
분석 결과, 루게릭병(ALS) 동물 모델은 운동 기능이 떨어졌음에도 파킨슨병에서 보였던 높은 파킨슨 행동지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행동 변화 양상도 파킨슨병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는 이번에 개발한 파킨슨 행동지수가 단순한 운동 장애가 아니라 파킨슨병에만 나타나는 특징적인 변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됨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파킨슨병 치료를 위해서 뇌 신경 세포기능을 빛으로 정밀하게 조절하는 광유전학 기술 ‘옵토렛(optoRET)’을 활용했다.
그 결과, 파킨슨병 동물 모델에서 걷기와 팔다리 움직임이 더 매끄러워지고 떨림 증상이 줄어드는 효과가 확인됐다. 특히 하루 걸러 한 번 빛을 쏘는 방식(격일 주기)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며, 뇌 속 도파민 신경세포도 보호되는 경향을 보였다.
허원도 석좌교수는 “이번 연구는 인공지능 기반 행동 분석과 광유전학을 결합해 파킨슨병의 조기진단–치료평가–기전검증을 하나로 잇는 전임상 프레임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라며, “향후 환자 맞춤형 치료제와 정밀의료로 이어질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우리 대학 생명과학연구소 현보배 박사후연구원이 제 1저자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8월 21일에 게재됐다. 또한, 현 박사는 보건산업진흥원의 ‘글로벌 의사과학자 양성사업’ 지원으로 하버드 의과대학 맥린병원에서 이번 성과를 기반으로 한 파킨슨병 세포 치료제 고도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논문명: Integrating artificial intelligence and optogenetics for Parkinson's disease diagnosis and therapeutics in male mice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5-63025-w
한편, 이번 연구는 KAIST 글로벌 특이점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 지원으로 수행됐다.
"왜 우울한가요?" 우울증 원인 규명하고 치료 실마리 밝혀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 MDD)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정신질환 중 하나지만, 그 분자적 발생 원인*은 여전히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국내 연구진은 우울증이 단순한 신경세포 손상 때문만이 아니라, 특정 신경 신호 경로의 교란으로 발생할 수 있음을 밝혀내며, 특히 고령 우울증 환자에게 기존 항우울제가 반응하지 않는 분자적 원인을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광유전학 기술을 활용한 신경 신호 조절 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했고, 고령 우울증 환자에게도 향후 ‘Numb’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분자적 발생 원인: 발병 원인에 대해 뇌 속 분자나 단백질, 유전자 수준에서 설명
우리 대학 생명과학과 허원도 석좌교수 연구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원장 이봉우) 이민주 법의관, 아주대학교의료원 (의료원장 한상욱) 병리과 김석휘 교수 연구팀과 협력하여, 극단 선택을 한 환자의 뇌 조직의 RNA 염기 분석과 면역조직화학 분석을 통해 우울증의 새로운 분자 기전을 규명하고, 광유전학(optogenetics) 기술을 통해 신경 회복을 유도하는 신호 경로를 조절함으로써 항우울 효과를 회복할 수 있음을 동물모델에서 증명했다고 19일 밝혔다.
연구팀은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해마(hippocampus), 특히 ‘치아이랑(dentate gyrus, DG)’이라는 부분에 주목했다. 치아이랑은 해마 안에 정보가 처음으로 들어올 때 새로운 기억 생성, 신경세포가 자라고 감정 조절과 우울증과 연관이 있는 공간에 해당된다.
2가지의 대표적인 우울증 마우스 모델(콜티코스테로이드 스트레스 모델 및 만성 예측 불가능 스트레스 모델)을 이용해 스트레스가 유발될 때, 이 DG 부위에서 성장인자(FGF)라는 신호물질을 받아서 세포 안의 성장·분화 명령을 전달하는‘FGFR1(Fibroblast Growth Factor Receptor 1)’이라는 신호 수용체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후, FGFR1 유전자라는 특별 조건을 제거한 ‘조건부 녹아웃(conditional knockout,cKO) 마우스’를 활용하여 해당 수용체가 제거된 상황에서는 스트레스에 더 취약하고 우울 증상을 더 빠르게 나타낸다는 점을 규명했다. 이는 FGFR1이 정상적인 신경 조절 및 스트레스 저항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어서 연구팀은 광유전학 기술을 활용해 스트레스 저항하는 데 매우 중요한 FGFR1을 빛으로 활성화할 수 있는 ‘optoFGFR1 시스템’을 개발, FGFR1이 부족한 우울증 마우스 모델에서 이를 활성화함으로써 항우울 효과가 회복되는 현상을 관찰했다. 즉, FGFR1 신호 활성화만으로도 우울 행동이 개선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노화된 우울증 마우스 모델에서는‘optoFGFR1 시스템’을 통한 FGFR1 신호 활성화에도 항우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원인을 탐색하던 중, 연구팀은‘Numb’이라는 단백질이 노화된 뇌에서 과도하게 발현돼 FGFR1의 신호전달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제로 연구팀이 수행한 사후 인간 뇌 조직 분석에서도 나이가 든 우울증 환자에게서만 Numb 단백질의 특이적 과발현이 관찰됐다. 이후, 마우스 모델에 Numb을 억제하는 유전자 조절 도구(shRNA)를 발현시키고 동시에 FGFR1 신호를 활성화한 결과, 회복되지 않던 노화된 우울증 마우스 모델에서도 신경 발생과 행동이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이는 Numb 단백질이 FGFR1 신호 경로의 ‘차단자’ 역할을 하며, 해마의 항우울 기전을 막는 주요 인자임을 보여준다.
KAIST 허원도 석좌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울증이 단순한 신경세포 손상만이 아니라, 특정 신경신호 경로의 교란에 의해 발생할 수 있음을 밝힌 데 큰 의미가 있다. 특히, 고령 환자에게 항우울제가 잘 듣지 않는 이유를 분자적으로 규명하고, 향후 Numb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KAIST의 뇌신경과학 역량과 국과수의 법의학 기반 뇌 분석 기술이 결합된 이번 융합연구를 통해, 향후 정신 질환 기초 연구와 임상 적용 간 연결 고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강조했다.
KAIST 생명과학과 신종필 박사과정이 제1 저자로 주도한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익스페리멘탈 앤 몰리큘라 메디슨(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에 2025년 8월 15일 자로 게재됐다.
- 논문명: Dysregulation of the FGFR1 signaling in hippocampus facilitates depressive disorder
- DOI: https://doi.org/10.1038/s12276-025-01519-9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ASTRA 및 바이오 의료개발 기술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