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말라가게 하는 '악액질' 잡았다
"잘 먹는데도 계속 살이 빠집니다.” 암 환자의 몸을 서서히 말라가게 하는 치명적인 합병증‘암 악액질(Cancer-associated cachexia)'을 막을 새로운 길이 열렸다. 우리 대학 연구진이 뇌의 신호를 차단해 근육 손실을 막고 생존기간을 늘릴 수 있는 RNA 치료 전략을 개발했다.
우리 대학은 의과학대학원 송민호 교수와 김진국 교수 공동연구팀과 교원창업기업 (주)토르 테라퓨틱스(THOR Therapeutics, 대표 송민호)가 공동연구를 통해 이 뇌에서 식욕과 에너지 소비를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인 GFRAL의 작동을 억제해 암 악액질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원리를 규명했다고 2일 밝혔다.
암 악액질은 전체 암 환자의 50~80%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합병증이다. 암세포가 몸의 대사를 교란하면서 음식을 충분히 먹어도 체중과 근육이 계속 줄고 극심한 쇠약을 겪게 된다. 이 때문에 항암 치료 효과가 떨어지고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아 생존율까지 낮아지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재 치료제는 식욕을 일시적으로 높이는 수준에 머물러 근육 손실과 대사 이상을 근본적으로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암 악액질의 원인이 몸이 아닌 뇌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암세포가 분비하는 GDF15(Growth Differentiation Factor 15, 암이 진행될 때 많이 분비되는 신호 단백질)가 뇌간의 GFRAL(세포가 신호를 받아들이는 단백질)과 결합하면‘먹지 말고 몸에 저장된 근육과 지방을 쓰라’는 신호가 전달돼 몸이 점점 쇠약해진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이를 막기 위해 연구팀은 김진국 교수 연구팀과 함께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 특정 유전자의 작동을 선택적으로 막는 RNA 기반 유전자 치료 기술)를 이용해 GFRAL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는 치료제를 개발했다.
쉽게 말해 암세포가 보내는‘몸을 말라가게 하라'는 명령을 받는 스위치를 꺼버린 것이다. 이 치료제는 RNA(유전정보를 단백질로 만드는 중간 전달물질) 단계에서 GFRAL 생성을 막아 암 악액질을 일으키는 신호 자체를 차단한다.
연구팀은 이미 암 악액질이 진행 중인 실험쥐에 이 치료제를 투여했다. 그 결과 근육과 지방 손실이 크게 줄고 무너졌던 대사 기능이 회복됐다. 특히 질환이 상당히 진행된 뒤 치료를 시작했음에도 연구 종료 시점(약 50일) 기준 생존율은 비투여군 20%, Gfral ASO 투여군 90%로 큰 차이를 보여 암 악액질 치료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식욕만 높이는 기존 치료와 달리 몸을 말라가게 만드는 신호 자체를 차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근육 손실과 대사 이상을 함께 개선했으며, 앞으로 기존 항암 치료와 병행해 암 환자의 삶의 질은 물론 치료 효과와 생존율까지 높일 수 있는 차세대 항암 보조 치료 전략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송민호 교수는 "기존 치료제가 식욕을 일시적으로 높이는 데 그쳤다면 이번 연구는 뇌간의 핵심 수용체를 RNA 수준에서 직접 표적해 암 악액질의 근본 원인을 억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후속 비임상 연구와 약물 생산·품질관리 체계를 차질 없이 진행해 2030년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개발에 착수하고, 암 환자의 삶의 질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치료제로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의과학대학원 홍현정 박사, (주)토르 테라퓨틱스 이민희 박사, 의과학대학원 박민성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송민호 교수와 김진국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 리포트 메디신(Cell Reports Medicine)’에 7월 27일 게재되었다.
※ 논문명: Therapeutic Gfral silencing via antisense oligonucleotides ameliorates cancer-associated cachexia and extends survival in tumor-bearing mice DOI : https://doi.org/10.1016/j.xcrm.2026.102939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 이공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항체에 암 찾아내는 ‘눈’ 달아...세포 속 암 돌연변이 겨냥한다
항체는 암세포를 찾아 공격하는‘유도 미사일'이지만, 세포 속 암 돌연변이는 닿지 못하는‘치료의 사각지대'였다. 우리 대학 연구진이 컴퓨터로 설계한 새로운 항체로 세포 내부 암 돌연변이까지 정밀하게 겨냥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항체 치료의 한계를 넘어 난치성 암을 겨냥한 차세대 정밀 치료의 새 길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오병하 교수 연구팀과 교원창업기업인 단백질 디자인 전문기업 ㈜테라자인(대표 오병하) 연구진이 공동으로 대표적인 암 유발 돌연변이인 KRAS(G12D)를 가진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인식하는 항체를 개발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팀은 컴퓨터 기반 계산적 항체 디자인 기술과 실험을 결합해 기존 방식으로는 개발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항체를 설계하고 질환 동물 모델에서 효능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
KRAS(G12D)는 세포의 성장과 증식을 조절하는 KRAS 단백질에 특정 돌연변이가 생긴 형태로, 췌장암과 대장암, 폐암 등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표적인 암 유발 돌연변이다. 하지만 KRAS 단백질은 세포 내부에 존재해 기존 항체 치료제로는 직접 표적하기 어려워 오랫동안‘치료 불가능한 표적(Undruggable Target)'으로 여겨져 왔다.
연구팀은 세포가 오래되거나 손상된 단백질을 자연스럽게 잘게 분해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세포 안의 KRAS(G12D) 단백질도 이 과정에서 작은 단백질 조각(네오항원, Neoantigen·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구별하는 단서가 되는 단백질 조각)으로 만들어지고, 일부는 세포 표면으로 이동해 면역세포에 제시된다. 연구팀은 컴퓨터 기반 계산적 단백질 디자인 기술과 실험적 선별 과정을 결합해 이 암 돌연변이 조각만 정확하게 인식하는 TCR 유사(TCR-like) 항체를 개발했다.
TCR(T Cell Receptor, T세포 수용체)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인 T세포가 세포 표면에 제시된 단백질 조각을 읽고 암세포나 바이러스 감염 세포를 찾아내는‘감지기' 역할을 한다. 이번에 개발한 TCR 유사 항체는 항체에 T세포의‘눈'을 달아준 것과 같은 원리로, 기존 항체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세포 내부 암 돌연변이의 흔적을 선택적으로 인식하도록 설계됐다.
실험 결과, 개발된 항체는 정상 세포나 다른 단백질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고 KRAS(G12D) 돌연변이를 가진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이를 면역치료에 적용한 결과 해당 돌연변이를 가진 암세포만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음도 입증했다. 이는 기존 항체 치료가 접근하지 못했던 세포 내부 암 유발 단백질까지 치료 대상으로 확장할 가능성을 제시한 성과로, KRAS뿐 아니라 다양한 암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차세대 정밀 항체 치료제 개발의 기반 기술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병하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항체는 KRAS(G12D) 돌연변이를 가진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식별할 수 있어 정상 세포 손상을 최소화하는 정밀 항체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이번 연구에서 개발한 계산적 항체 디자인 기술은 KRAS뿐 아니라 다양한 암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차세대 항체 치료제 개발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와 교신저자는 모두 KAIST 출신 연구진으로 구성됐다. ㈜테라자인 안상필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오병하 교수와 ㈜테라자인 정보성 연구소장이 공동 교신저자로 연구를 총괄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유전자 및 세포 치료 분야의 세계적 권위 학술지인‘몰레큘러 테라피(Molecular Therapy)' 온라인판에 6월 3일 게재됐다.
※ 논문명 : Discovery of TCR-like antibodies to the KRAS G12D neoantigen via in silico-in vitro workflow, DOI: https://doi.org/10.1016/j.ymthe.2026.05.032
한편 이번 연구는 ㈜테라자인과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산하 한국신약개발지원센터와의 협업으로 수행됐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학연계 신약개발지원사업과 한국연구재단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혈액 한 번으로 대장암 재발·전이 더 정확히 예측한다
혈액 한 번의 검사만으로 대장암 환자의 재발과 전이 위험을 기존보다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 대학 공동연구팀은 대장암이 진행될수록 혈액 속 대사물질들의 연결 구조, 이른바 ‘대사의 지도’가 체계적으로 재편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또한 이 변화를 활용해 기존 혈액검사보다 대장암 환자의 재발과 전이 위험을 더 정확하게 예측하는 새로운 분석 기술을 개발했다.
우리 대학은 의과학대학원 이지민 교수와 화학과 김현우 교수 공동 연구팀이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과 공동연구를 통해 혈청 순환 아미노산(Circulating Amino Acids, 혈액 속을 순환하며 몸의 대사 상태를 반영하는 아미노산) 네트워크를 분석하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연구팀은 이를 활용해 대장암이 진행될수록 몸 전체의 대사 체계가 재편된다는 사실을 규명하고, 환자의 재발과 전이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분석 전략을 제시했다.
암세포는 성장과 증식을 위해 많은 영양소를 필요로 한다. 그중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만드는 재료일 뿐 아니라 에너지를 생산하고 DNA를 합성하는 등 암세포의 생존과 증식에 필수적인 물질이다. 특히 대장암은 이러한 아미노산 대사가 크게 변화하는 대표적인 암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변화는 종양 조직에만 머무르지 않고 혈액 속에도 나타난다. 따라서 혈액 속 아미노산은 몸 전체의 대사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사 바이오마커(Biomarker, 생체지표) 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개별 아미노산의 농도가 얼마나 변하는지를 분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미노산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함께 변화하는지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소량의 혈청만으로 18종의 순환 아미노산을 동시에 정밀 분석할 수 있는 19F NMR(Fluorine Nuclear Magnetic Resonance, 불소 핵자기공명 분광법) 기술을 적용했다. 이어 각 아미노산의 농도뿐 아니라 서로의 연결 관계를 네트워크 형태로 분석한 결과, 대장암이 진행될수록 혈액 속 아미노산 네트워크가 단계적으로 재편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
이러한 변화는 암이 성장하면서 몸 전체의 대사 체계를 새롭게 바꾸는 전신 대사 재프로그래밍(Systemic Metabolic Reprogramming, 암의 성장에 맞춰 몸 전체의 대사 체계가 다시 구성되는 현상)을 반영하는 핵심 특징으로 분석됐다.
특히 대장암이 진행될수록 근육과 에너지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발린과 류신 등 분지사슬아미노산(BCAA, Branched-Chain Amino Acids)의 비율은 감소한 반면, 암세포가 DNA를 만들고 빠르게 증식하는 데 필요한 글리신과 세린의 비율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암이 자라면서 몸 전체의 아미노산 사용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글리신이었다. 암세포가 활발하게 사용하는 아미노산으로 알려져 있어 혈액에서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상대적 비중이 증가했다. 연구팀은 글리신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호작용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도 확인했으며, 이는 대장암이 진행될수록 몸 전체의 대사 체계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어 아미노산 네트워크 분석에서 얻은 연결 정보를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컴퓨터가 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예측하는 인공지능 기술) 모델에 적용해 대장암 환자의 재발과 전이 위험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팀이 개발한 분석 방법은 현재 병원에서 대장암 환자의 경과를 살필 때 널리 사용하는 혈액검사 지표인 암배아성항원(CEA, Carcinoembryonic Antigen)보다 재발과 전이 위험을 더 정확하게 예측했다. 또한 혈액 속 개별 아미노산의 양만 분석하는 기존 방법보다도 높은 예측 정확도를 보였다.
이는 혈액 속 아미노산의‘양'만 보는 기존 분석을 넘어 아미노산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변화하는지를 함께 분석해야 암의 진행 상태를 더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혈액 속 아미노산 간 상호작용 네트워크, 이른바‘대사의 지도'를 새로운 혈액 기반 대사 바이오마커로 활용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지민 교수는 "이번 연구는 혈액 속 개별 아미노산의 농도가 아니라 아미노산 간 연결 구조를 함께 분석해 대장암이 몸 전체의 대사 체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처음 규명했다”며 "앞으로 혈액검사만으로 대장암 환자의 재발 위험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 전략을 수립하는 새로운 정밀의료 기술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연구는 KAIST 연구처‘석·박사 모험연구사업'에서 시작됐다. 의과학과 화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이‘혈액 속 아미노산 네트워크를 이용해 암을 분석해 보자'는 융합 아이디어를 공동으로 제안했고, 이 아이디어가 연구과제로 선정되면서 세계적 연구성과로 이어졌다. 학생 주도의 융합 연구가 세계 수준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의미 있는 사례다.
배충식 KAIST 총장은 "이번 연구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발상과 학문 간 융합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음을 보여준 KAIST다운 연구”라며 "KAIST는 앞으로도 학생과 연구자들이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창의적인 융합 연구를 적극 지원해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혁신기술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의과학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 이지연 학생과 화학과 박사후연구원 김주미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KAIST 이지민 교수와 김현우 교수, 서울아산병원 박은정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Advanced Science(Impact Factor=14.1)에 2026년 6월 9일 온라인 게재됐다.
※ 논문명: Circulating Amino Acid Network Remodeling Reveals Systemic Metabolic Reprogramming Predictive of Colorectal Cancer Recurrence and Metastasis, DOI: 10.1002/advs.76044
이번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SRC 뇌혈관장벽연구센터, 보스턴코리아사업,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신약개발)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난치성 뇌종양 면역치료의 ‘숨은 열쇠’ 찾았다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작동시키는‘면역 브레이크’를 해제해 면역세포가 다시 암을 공격하도록 돕는 항암제)가 왜 일부 뇌종양에서는 효과를 내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풀 실마리가 나왔다. 국내 연구진이 암을 공격하는 주역이 T 세포뿐 아니라 종양과 연결된 림프절의 B 세포와 항체라는 사실을 밝혀내며, 난치성 뇌종양 면역치료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이흥규 교수 연구팀이 면역관문억제제의 일종인 항-CTLA-4(Anti-CTLA-4)가 종양과 연결된 종양 배수 림프절(Tumor-draining lymph node, 암세포에서 나온 항원이 가장 먼저 모여 면역반응이 시작되는 림프절)의 B 세포(B cell, 항체를 만들어 면역반응을 돕는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뇌종양을 공격하는 새로운 면역 원리를 규명했다고 19일 밝혔다.
교모세포종(Glioblastoma)은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아도 재발이 잦고 예후가 매우 나쁜 대표적인 악성 뇌종양이다. 면역세포의 기능을 회복시켜 암을 공격하도록 하는 면역관문억제제는 다양한 암에서 뛰어난 치료 성과를 보여왔지만, 교모세포종에서는 암 주변의 강한 면역억제 환경 때문에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T 세포(T cell, 암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면역세포)를 면역관문억제제의 핵심 표적으로 여겨왔다. 반면 B 세포는 백신 접종 후 항체를 생성하는 세포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뇌종양 면역치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거의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항-CTLA-4가 T 세포뿐 아니라 B 세포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에 주목했다.
실험 결과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었다. 마우스 교모세포종 모델에서 항-CTLA-4를 투여하자 종양 크기가 감소하고 생존율이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B 세포가 없는 마우스에서는 같은 치료를 해도 이러한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B 세포가 면역관문억제제의 치료 효과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B 세포가 활약하는 장소도 새롭게 밝혀냈다. B 세포 반응은 암세포가 있는 뇌가 아니라, 뇌와 연결된 목 깊은 곳의 림프절인 ‘깊은 경부 림프절(Deep Cervical Lymph Node)'에서 활발하게 증가했다. 특히 이 림프절에서는 항체 반응 형성에 중요한 배중심 B 세포와 여포 보조 T 세포 반응이 함께 증가했으며, 이는 이후 면역글로불린 G(Immunoglobulin G, IgG, 암세포를 표적으로 인식해 제거를 돕는 대표적인 항체) 반응 증가와 연결됐다.
생성된 IgG 항체는 뇌종양 세포 표면에 결합해, 대식세포(Macrophage, 우리 몸에서 이물질과 암세포를 잡아먹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더욱 효과적으로 제거하도록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과정도 생체 내에서 직접 확인했다. 붉은색 형광단백질(mCherry)과 녹색 형광단백질(EGFP)을 이용한 특수 뇌종양 모델을 활용해 면역관문억제제 치료 후 대식세포가 뇌종양 세포를 실제로 활발하게 제거하는 모습을 생체 내에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감염이나 백신 반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B 세포 면역반응이 난치성 뇌종양 면역치료의 효과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기능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면역치료가 종양 내부뿐 아니라 종양 배수 림프절에서 시작되는 면역반응에 의해 크게 좌우될 수 있음을 제시하며, 기존의 T 세포 중심 면역치료 개념을 B 세포와 항체 면역까지 확장했다.
이흥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항-CTLA-4 면역치료의 작동 원리를 T 세포 중심으로 이해하던 기존 개념을 넘어, 종양 배수 림프절에서 시작되는 B 세포와 항체 면역반응이 치료 효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축임을 규명한 연구”라며 "향후 뇌종양을 인식하는 항체의 표적을 규명하고 림프절 기반 B 세포 면역반응을 강화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난치성 교모세포종을 비롯한 다양한 암의 차세대 면역치료 전략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과 김유민 박사후 연구원이 제 1저자로 참여했으며, 이흥규 교수가 교신저자로 KAIST 의과학대학원 오지은 교수가 연구 참여를 하였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적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 이뮤놀로지(Science Immunology)’에 7월 10일 자 게재됐다.
※ 논문명: The efficacy of immunotherapy in glioma requires distal B cell responses in tumor-draining lymph nodes. DOI: 10.1126/sciimmunol.adz2494
※ 저자 정보: 김유민, 강인, 강병훈, 박원형, 김채원, 김현진, 나정우, 권명승, 박상희, 임서현, 김현철, 구근본, 김민지, 오지은 (KAIST, 공동저자) 및 이흥규 (KAIST, 교신저자)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이공분야기초연구사업,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 AI-네이티브첨단바이오자율실험실과제, 박사과정생연구장려금지원사업 및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화학 시약 대신 ‘온도’만으로 DNA 합성 가능하다
“DNA를 만들려면 복잡한 화학 공정이 필수다.”
바이오 분야에서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졌던 상식을 국내 연구진이 뒤집었다. 한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온도만으로 원하는 DNA를 합성하는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활용해 배송 과정의 온도 변화를 전력 없이 기록하는 ‘DNA 온도 블랙박스’도 구현했다.
우리 대학은 공학생물학대학원 최영재 교수 연구팀이 ㈜에이티지라이프텍(대표 류태훈), 이화여자대학교(총장 이향숙) 생명과학과 최한솔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온도만 조절해 원하는 DNA 서열을 합성하는 원천 플랫폼 기술을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DNA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설계도’다. 과학자들은 원하는 DNA를 만들어 질병을 진단하고 신약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기능을 가진 미생물을 만드는 등 다양한 바이오 기술에 활용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DNA를 구성하는 네 가지 염기(A·T·G·C)를 하나씩 연결할 때마다 화학 시약을 넣고 씻어내는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이 때문에 수억 원대의 자동 DNA 합성 장비와 전문 연구시설이 반드시 필요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온도에서만 반응하는 헤어핀 DNA’를 개발했다. 위 헤어핀 DNA는 머리핀처럼 접혀 있다가 일정한 온도에서만 펼쳐지는 특수한 DNA 구조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온도에서 작동하는 여러 종류의 헤어핀 DNA를 하나의 시험관에 넣고, 온도만 순서대로 바꾸는 방식으로 원하는 DNA를 차례대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에는 DNA를 만들기 위해 화학 시약을 계속 교체해야 했다면, 이번에는 처음부터 필요한 재료를 하나의 시험관에 넣어두고 온도만 바꾸면 DNA가 순서대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방식을 구현한 것이다. 복잡한 시약 교체나 대형 장비 없이도 일반적인 온도 조절 장치만으로 DNA를 합성할 수 있는 길을 연 셈이다.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미는 DNA를 만드는 ‘방법’ 자체를 바꿨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화학 시약이 DNA 합성 과정을 하나하나 제어했다면, 이번에는 누구나 쉽게 조절할 수 있는 ‘온도’가 그 역할을 대신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 기술이 발전하면 DNA를 만드는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여 합성생물학과 유전자 연구는 물론, 신약 개발과 정밀의료 등 다양한 바이오 산업의 진입 장벽도 크게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팀은 개발한 기술이 실제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무전원 ‘DNA 온도 블랙박스’도 구현했다. 이 장치는 평소에는 동결건조 상태로 보관하다가 사용 직전 물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작동을 시작한다. 이후 배송 과정에서 언제, 얼마나, 어떤 순서로 온도가 변했는지를 DNA 서열에 자동으로 기록한다. 또한 일정 온도 이상에 노출되면 색이 변해 이상 여부를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어 백신과 바이오의약품, 세포치료제, 신선식품 등 저온 유통이 중요한 제품의 품질 관리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영재 교수는 “이번 연구는 화학 시약 대신 온도만으로 DNA를 합성할 수 있다는 새로운 원리를 제시한 세계 최초의 원천기술”이라며 “DNA 합성을 더욱 쉽고 경제적으로 만들어 바이오 기초 연구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무전원 DNA 온도 블랙박스와 같은 새로운 산업 응용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KAIST 최장호 연구원과 GIST 김진호 박사과정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7월 2일 자 게재됐다.
※ 논문명 : Programmable one-pot polymerase-mediated DNA synthesis via temperature control
※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6-74890-4
※ 관련동영상I: https://drive.google.com/file/d/1bUtzC83qIm1k-hNFKTb09yFPhfsD4iU-/view?usp=drive_link
※ 저자 : 최장호(KAIST, 공동 제1저자), 김진호(GIST, 공동 제1저자), 최한솔(이화여자대학교, 교신저자), 최영재(KAIST, 교신저자)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미래유망 융합기술 파이오니아사업, 바이오파운드리기반기술개발사업, 신진연구자지원사업, 글로벌기초연구실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몸짓도 언어다… 동물 행동의 의미 읽는 AI 개발
생쥐의 몸짓을 단어처럼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우리 대학 연구진은 행동 데이터를 언어처럼 학습해 자폐 모델 생쥐의 사회적 행동 결함을 스스로 찾아내는 AI 모델 ‘비헤이버트(BehaVERT)’를 개발하며 해석 가능한 뇌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우리 대학 뇌인지과학과 김대수 교수 연구팀이 동물의 움직임을 언어처럼 읽고 해석하는 인공지능(AI) 모델을 개발했다고 1일 밝혔다.
연구팀은 생쥐의 골격 움직임을 자연어의 단어에 해당하는 ‘토큰(token)’으로 변환해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는 AI 모델 ‘비헤이버트'를 구현했다. 이 모델은 별도의 사전 지식 없이도 자폐 모델 생쥐의 핵심 사회행동 결함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동물 행동을 언어처럼 분석하는 새로운 인공지능 접근법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AI가 단순한 행동 분류를 넘어 행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향후 신약 개발과 정신질환 연구, 행동유전학 분야를 위한 차세대 '행동 파운데이션 모델(Behavior Foundation Model)'의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팀은 생쥐의 코, 귀, 척추, 사지, 꼬리 등 신체 부위의 골격 좌표를 토큰으로 변환한 뒤 자연어 처리에 널리 사용되는 BERT 기반 트랜스포머 모델에 입력해 학습시켰다. 그 결과 비헤이버트는 단순히 행동을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행동의 의미를 스스로 학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된 모델은 사회적 상호작용, 다개체 행동, 3차원 움직임 분석, 자폐 행동 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국제 표준 벤치마크 5종에서 기존 최고 수준의 성능을 뛰어넘었다. 비헤이버트는 자신이 어떤 행동에 주목해 판단을 내렸는지 연구자에게 알려주는 해석 가능성(interpretability)도 갖추고 있다.
실험 결과, 모델은 자폐 모델 생쥐(Shank3B 유전자 결손)와 정상 생쥐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입과 입을 맞대는 접촉(oral-oral contact)’에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폐 모델 생쥐가 접근 행동은 정상적으로 수행하지만 실제 사회적 상호작용에는 결함을 보인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즉, AI가 사전에 생물학적 지식을 학습하지 않았음에도 행동 관찰만으로 자폐 행동의 핵심 특징을 스스로 발견한 것이다.
연구팀은 AI가 행동을 단순히 분류하는 것을 넘어 행동의 의미까지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AI 내부에서는 움직임과 주의, 사회성 같은 행동 특성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었으며, 이는 동물 행동에도 언어와 유사한 의미 구조가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에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도전이 담겨 있다. 제1저자인 신승재 박사를 비롯한 연구진은 모두 생명과학을 전공한 연구자들로, 인공지능을 직접 익혀 행동 분석에 특화된 모델과 학습 전략을 설계했다. 김대수 교수 연구실은 그동안 동물 행동 데이터를 활용한 AI 연구를 수행해 왔으며, 쥐의 행동을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아바타(AVATAR)’ 기술을 개발해 ㈜액트노바를 창업한 바 있다.
제1저자인 신승재 박사는 “동물의 움직임에도 언어와 같은 구조가 존재할 수 있다는 질문에서 연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사람이 정답을 알려주지 않아도 AI가 행동 데이터만으로 스스로 학습하는 방식을 도입했으며, 쥐의 행동으로 학습한 모델이 생쥐의 행동 분석에도 성공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향후 여러 동물 종에 적용 가능한 '행동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대수 교수는 “비헤이버트는 단순히 행동을 분류하는 것을 넘어 행동의 의미까지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이라며 “향후 신약 개발과 정신질환 연구, 행동유전학 등 다양한 생명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을 이끄는 핵심 연구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뇌인지과학과 신승재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컴퓨터비전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중 하나인 International Journal of Computer Vision(IJCV)에 2026년 3월 24일 게재됐다.
※ 논문명: BehaVERT: A Transformer-Based Motion Language Model for Decoding Behavioral Semantics in Mice, DOI: 10.1007/s11263-026-02834-y
※ 관련 동영상:
● BehaVERT — 사회적 행동 분석 시각화 (Investigation & Mount), https://youtu.be/JshCr-ZBQR0
● BehaVERT — 사회적 행동 분석 시각화 (Investigation & Attack), https://youtu.be/p9RPhZM__Js
● BehaVERT — 자폐 모델 생쥐의 핵심 사회행동을 AI가 스스로 발견하다, https://youtu.be/D6zUyDu3t9I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고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및 뇌과학선도융합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암이 ‘혈관 발달 설계도’ 훔쳐 쓰는 원리 첫 규명
암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새로운 혈관의 생성을 막는 항암치료인 '항혈관신생 치료'의 한계를 극복할 전략이 제시됐다. 한국 연구진은 종양이 정상 혈관을 만드는 '설계도'를 훔쳐 새로운 혈관을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인 인테그린(Integrin)을 새로운 치료 표적으로 제시했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정인경 교수, 의과학대학원 이지민 교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장석복) 혈관 연구단 고규영 교수 공동 연구팀이 종양이 정상 혈관 발달 과정에서만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유전자 프로그램을 다시 활성화해 혈관신생(종양에 필요한 새로운 혈관을 만드는 과정)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29일 밝혔다.
종양은 성장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얻고, 나아가 다른 조직으로 퍼지기 위해 주변에 새로운 혈관이 자라도록 유도한다. 이를 막기 위해 혈관신생 억제 치료제가 사용되고 있지만, 장기적인 치료 효과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이는 종양 혈관 세포가 주변 환경에 맞춰 성질을 쉽게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8종의 고형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암의 종류와 관계없이 종양 혈관 세포에서 새로운 혈관을 자라게 하고 세포 주변 환경을 바꾸는 유전자들이 공통적으로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특징은 대장암을 비롯한 여러 암에서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또한 세포 하나하나에서 어떤 유전자가 작동하는지를 분석하는 단일세포 전사체(single-cell transcriptome)와 DNA 서열은 그대로 유지한 채 유전자 작동을 조절하는 정보를 분석하는 후성유전체(epigenome) 분석을 통해, 종양 혈관 세포의 유전자 조절 체계가 다시 바뀌면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그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인간 배아줄기세포(우리 몸의 다양한 세포로 자랄 수 있는 줄기세포)를 혈관 내피세포(혈관 안쪽을 이루는 세포)로 분화시켜 정상 혈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재현했다.
이어 정상 혈관이 발달하는 각 단계에서 어떤 유전자들이 작동하는지를 분석한 결과, 종양 혈관에서 활성화되는 유전자 프로그램은 정상 혈관이 완성되기 직전인 후기 전구체 단계(late progenitor stage, 성숙한 혈관 세포가 되기 직전 단계)에서만 잠시 나타나는 프로그램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단일세포 후성유전체 및 3차원 게놈 분석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는 종양이 혈관신생을 위해 새로운 메커니즘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정상 혈관 발달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유전자 프로그램을 다시 활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새로운 설계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사용했던 설계도를 다시 꺼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또한 연구팀은 종양미세환경(종양을 둘러싼 세포와 조직 환경)을 분석한 결과, 인테그린이 이러한 유전자 프로그램을 다시 활성화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제 대장암 환자의 종양 혈관에서는 인테그린의 발현이 증가했으며, 이를 억제하자 이종이식 마우스 모델(사람의 암 조직을 이식한 실험용 생쥐)에서 종양 혈관 형성과 종양 성장도 함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인경 교수는 "이번 연구는 종양이 새로운 혈관을 만드는 방법을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정상 혈관이 만들어질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다시 이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데 의미가 있다"며 "이번 성과가 기존 항혈관신생 치료(종양으로 자라는 새로운 혈관을 막는 치료)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또는 종양혈관을 정상혈관으로 전환 시킬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박사후연구원 이정운 박사(현 하버드대학교 박사후연구원), 민선우 박사(현 충남대학교 교수), 추메이위(Mei-Yu Qiu) 박사, 박수찬 박사과정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정인경 교수, 이지민 교수, 고규영 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암연구학회(AACR)의 국제학술지 Cancer Research(IF=22.3)에 6월 8일 온라인 게재됐다.
※ 논문명: A Co-opted Developmental Gene Regulatory Program in Endothelial Progenitors Promotes Tumor Angiogenic Phenotypes, DOI: 10.1158/0008-5472.CAN-25-5094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사업과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 KAIST 이노코어(InnoCORE) 사업 및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서울시내 바늘 찾기’ 같은 DNA 초고속 수리 원리 밝혔다
DNA는 우리 몸의 설계도다. 하지만 DNA에는 매일 수만 건의 손상이 발생한다. 특히 유전 정보가 비어버린 ‘무염기 부위(AP site·DNA 정보의 글자 하나가 지워진 손상 부위)’가 제대로 복구되지 않으면 암과 노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방대한 유전체 속에서 이런 미세한 손상 부위를 찾아내는 일은 마치 ‘서울 시내에서 바늘 한 개를 찾는 것’만큼 어렵다. 국내 연구진이 DNA 복구 효소가 DNA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손상 부위를 초고속으로 탐색하는 비밀을 밝혀냈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이광록 교수팀이 UNIST(총장 박종래) 이자일 교수팀, 성균관대(총장 유지범) 유제중 교수팀과 함께 DNA 복구 효소 ‘APE1(apurinic/apyrimidinic endonuclease 1·DNA 손상 부위를 인식해 복구를 시작하는 효소)’이 손상된 DNA를 찾아내는 정밀한 분자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4일 밝혔다.
연구팀은 단일분자 FRET(smFRET·단일 생체분자의 움직임과 구조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분석 기술)과 DNA curtain(DNA 여러 가닥을 정렬해 단백질과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는 기술), 분자동역학(MD·컴퓨터로 분자 움직임을 계산하는 시뮬레이션 기법)을 결합해 APE1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그 결과 APE1은 무작위로 DNA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DNA 가닥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며 손상 부위를 찾는 ‘1차원 확산(1D diffusion·DNA 선을 따라 이동하며 탐색하는 방식)’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거대한 도시 아래 미로처럼 얽힌 지하 배관 속을 따라 이동하며 미세한 누수 지점을 찾아내는 지능형 점검 로봇과 비슷하다. 단순히 이곳저곳을 무작정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DNA라는 ‘유전체 고속도로’를 따라 효율적으로 이동하며 손상 부위를 빠르게 찾아내는 것이다.
특히 연구팀은 효소 끝부분의 유연한 구조인 ‘비정형 영역(IDR·일정한 형태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단백질 구간)’이 DNA 탐색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 비정형 영역은 갈고리처럼 DNA를 붙잡아 APE1이 DNA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제로 연구팀이 해당 영역을 제거하자 손상 부위를 찾는 능력이 5배 이상 감소했다.
또한 연구진은 마그네슘 이온(Mg²⁺·세포 내 다양한 효소 반응을 돕는 금속 이온)이 단순한 보조 인자를 넘어 DNA 탐색 효율을 높이는 핵심 요소라는 점도 확인했다. 마그네슘 이온은 APE1과 DNA의 결합을 안정화해 효소가 DNA 위를 더욱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
KAIST 이광록 교수는 “이번 연구는 생체 분자가 비정형 영역(IDR)을 통해 DNA 손상 부위를 빠르게 탐색한 뒤, 정형 영역을 통해 정교하게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라며 “이 원리는 암세포의 DNA 복구 기능을 무력화하는 차세대 항암제 개발과 노화 억제 연구의 핵심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UNIST 이자일 교수는 “특정 구조 없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다양한 분자와 상호작용하는 비정형 영역이 DNA 손상 부위를 찾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이동훈 박사, UNIST 김수빈 박사과정, 성균관대학교 조경필 박사과정이 공동 제1저자로 세계적 국제학술지 ‘핵산 연구 (Nucleic Acids Research)’에 5월 14일 게재됐다.
※ 논문명 : APE1 Coordinates Its Disordered Region and Metal Cofactors to Drive Genome Surveillance, DOI : org/10.1093/nar/gkag479
한편 이번 연구는 KAIST Grand Challenge 30 Project(KC30), 한국연구재단 합성생물학핵심기술개발사업, 중견연구지원사업, 기초연구실, 한국신약개발사업단 신약기반확충연구사업, 기초과학연구원(IBS),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인공지능첨단원천유망기술개발사업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몸 속 지방산이 암세포 성장 억제하는 ‘천연 브레이크’였다
우리 몸속 단백질인 ‘엠토르(mTOR)’는 암세포에서 과도하게 활성화돼 세포 성장과 전이를 촉진한다. 한국 연구진은 식물성 기름 등에 풍부한 지방산이 체내에서 대사되며 생성되는 물질인 ‘13-HODE’가 엠토르에 직접 결합해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천연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차세대 항암 치료 전략 개발 가능성을 제시한 성과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김세윤 교수 연구팀이 고려대학교(총장 김동원) 약학대학 변영주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체내 지질 대사물질인 13-HODE(지방산이 대사되며 생성되는 지질 대사물질)가 암세포 성장의 핵심 조절 인자인 엠토르의 활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2일 밝혔다.
또한 이번 연구에는 KAIST 생명과학과 김미영 교수, 가천대학교(총장 이길여) 의과대학 오병철 교수,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약학대학 패트릭 윈트로드(Patrick Wintrode) 교수, 다니엘 데레지(Daniel Deredge) 교수 연구진이 공동연구로 참여하였다.
엠토르는 세포 성장과 에너지 사용을 조절하는 중요한 효소(생체 반응을 돕는 단백질)다. 하지만 암세포에서는 엠토르 활성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해 세포 증식과 전이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엠토르를 제어하기 위한 항암 치료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연구팀은 엠토르 단백질과 결합할 수 있는 물질들, 특히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천연 대사물질에 주목했다. 방대한 대사체 스크리닝(생체 내 대사물질을 대량 분석하는 기술)을 통해 발굴한 ‘13-HODE’ 라는 지방이 몸속에서 변하면서 생기는 지질 대사물질이 엠토르 단백질의 활성 부위에 직접 달라붙어 암세포에서의 작동을 멈추게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13-HODE(13-Hydroxyoctadecadienoic acid) 분자는 우리 몸에서 식물성 기름 등에 풍부한 리놀레산(필수 불포화지방산)이 체내에서 대사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ALOX15(지방산 산화 반응을 유도하는 효소)’가 리놀레산을 산화시키며 13-HODE를 만든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13-HODE가 암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는 단순한 수준을 넘어서, 엠토르 단백질과 물리적으로 직접 결합하여 그 기능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분자 기전(생체 내 작동 원리)을 규명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분자 결합 시뮬레이션(컴퓨터 기반 분자 상호작용 분석)과 질량분석(분자의 질량과 구조를 분석하는 기술) 등을 통해 검증했다.
연구팀은 유방암과 대장암 세포에서 13-HODE 농도가 매우 낮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는 13-HODE 생성에 필요한 ALOX15 효소의 발현(유전정보가 실제 단백질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감소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ALOX15와 13-HODE의 생성을 증가시키면 엠토르 활성이 감소하고 암세포 성장도 억제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김세윤 교수는 “이번 연구는 인체 내에서 생성되는 지방 대사물질이 암 성장 핵심 단백질인 엠토르를 직접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낸 데 의미가 있다”며 “향후 지방 대사를 활용한 새로운 항암 치료 전략뿐 아니라 염증과 노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엠토르 과활성을 조절하는 치료제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연구를 수행한 고려대학교 약학대학 변영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생명과학과 약학의 융합을 통해 단백질과 지방산 대사체의 상호작용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한 연구”라며 “향후 혁신 신약 개발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엠토르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미국 일리노이대 지에 첸(Jie Chen) 교수는 저널 프리뷰를 통해 “암세포 제어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탁월한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KAIST 생명과학과 박승주 박사, 김세라 박사과정 학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하고 고려대학교 약학대학 변영주 교수, KAIST 생명과학과 김세윤 교수가 공동교신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화학생물학 분야 국제 학술지 셀 케미컬 바이올로지(Cell Chemical Biology)에 지난 5월 21일 게재되었다. 또한 연구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저널 5월호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었다.
※논문 제목: Mechanism by which a linoleic acid metabolite suppresses cancer cell growth by inhibiting mTOR, DOI: https://doi.org/10.1016/j.chembiol.2026.04.004
※주저자 정보: 박승주 박사(KAIST, 제1저자), 김세라 박사과정 (KAIST, 제1저자), 변영주 교수(고려대학교 약학대학, 공동교신저자), 김세윤 교수(KAIST 생명과학과, 공동교신저자)
한편, 이번 연구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중견연구지원사업,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실, 선도연구센터, KAIST 퀀텀+X 학제간 융합기술개발과제, KAIST 그랜드 챌린지 사업, 교육부 중점연구소 사업 지원등을 받아 수행됐다.
빛으로 원하는 순간·위치에서 암 치료하는 ‘스마트 항체’ 개발
기존 CAR-T(환자 면역세포를 유전적으로 조작해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만든 세포치료 기술) 치료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인식하면 즉시 공격해 정상세포까지 손상시키는 부작용 위험이 있었다. 우리 대학 연구진은 빛이나 화학 자극이 있을 때만 작동하는 스위치형 ‘스마트 항체’ 기술을 개발해, 원하는 순간과 위치에서만 면역세포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허원도 석좌교수 연구팀이 빛과 화학 자극을 이용해 세포 밖 항원 인식을 제어할 수 있는 ‘엑스트라바디(Extrabody)’플랫폼을 개발했다고 27일 밝혔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통해 면역세포가 원하는 순간에만 서로 반응하고 작동하도록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항체를 두 조각으로 분리한 뒤, 외부 자극이 있을 때만 다시 결합하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항체는 생성되자마자 항원에 결합하지만, 연구팀은 빛 또는 화학물질이 존재할 때만 두 항체 조각이 재결합해 항원을 인식하도록 구현했다.
즉, 단순히 항상 작동하는 기존 항체 시스템과 달리, 필요한 순간에만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온디맨드(on-demand·필요한 순간에만 활성화되는 방식) 항체 플랫폼’을 구현한 것이다.
연구팀은 빛에 반응하는 시스템과 화학물질에 반응하는 시스템을 각각 구축했으며, 형광 단백질뿐 아니라 암세포 표면에 많이 발현되는 EGFR(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HER2(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2) 단백질에도 적용 가능함을 확인했다.
실험 결과, 외부 자극이 있을 때만 항원 결합이 선택적으로 활성화됐으며, 다양한 항체 구조에서도 동일한 원리가 작동했다. 이는 엑스트라바디가 여러 표적과 항체 형태에 적용 가능한 모듈형 플랫폼(Modular platform·다양한 표적과 기능으로 확장 가능한 기술 구조)임을 보여준다.
또한 연구팀은 엑스트라바디가 단순한 항원 인식을 넘어 세포 간 상호작용까지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빛 자극이 있을 때만 세포끼리 접촉하고 항원을 전달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자극이 없을 때는 이러한 반응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항원이 세포 내부로 전달되는 과정도 관찰돼, 향후 세포 간 정보 전달 연구에도 활용 가능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나아가 엑스트라바디를 합성수용체(synNotch·특정 신호를 받을 때만 세포 반응을 유도하도록 설계한 합성 생물학 기술) 및 CAR 시스템(면역세포가 특정 암세포를 인식·공격하도록 설계한 기술)에 적용했다. 그 결과 빛과 항원이 동시에 존재할 때만 세포 내부 신호가 활성화되는 ‘이중 잠금장치(double-gating·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될 때만 작동하는 방식)’가 구현됐다.
이를 통해 유전자 발현, 사이토카인(Cytokine·면역세포 간 신호 전달에 사용되는 단백질) 분비, 면역세포 활성화 등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었으며, 실제 T세포 실험에서는 빛 자극이 있을 때만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현상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이 기존 CAR-T 세포치료에서 문제로 지적돼 온 비의도적 면역 활성화와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허원도 석좌교수는 “이번 연구는 외부 자극을 이용해 세포 표적 인식을 원하는 시점과 위치에서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 기술”이라며 “향후 차세대 면역치료와 세포 기반 치료 기술의 안전성과 정밀도를 높이는 핵심 기반 기술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AIST 생명과학과 권유리 박사와 유다슬이 박사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셀 케미컬 바이올로지(Cell Chemical Biology) 온라인판에 5월 7일 게재됐다.
※ 논문명: An extracellular, optogenetic antibody platform for stimulus-gated antigen recognition and modulation of cell behavior, DOI: https://doi.org/10.1016/j.chembiol.2026.04.006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의 ASTRA 사업과 바이오·의료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왜 과거 기억에 머무를까?”...KAIST, 기억 전환 스위치 규명
“치매나 인지저하 환자들은 왜 과거 기억에 머무를까?”
우리 대학 연구진이 우리 뇌 속에서 최신 기억을 선택적으로 불러오는 ‘신경 스위치’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뇌가 과거 기억과 새로운 기억 사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는 원리를 밝혀낸 것으로, 향후 기억력 감퇴와 인지 유연성 저하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 연구팀이 내측중격(Medial Septum, MS·기억과 학습을 조절하는 뇌 영역)과 내측내후각피질(Medial Entorhinal Cortex, MEC·해마*와 연결돼 기억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을 잇는 특정 신경 회로가 과거 기억과 최신 기억 사이를 전환하며, 상황에 맞는 최신 정보를 선택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고 17일 밝혔다.
*해마(hippocampus):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저장하는 핵심 뇌 부위
우리는 매일 새로운 경험을 통해 기억을 업데이트하며 살아간다. 예를 들어 어제보다 오늘 방문한 식당이 더 만족스러웠다면, 뇌는 기존 기억을 수정해 새로운 정보를 반영한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기억 사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는 능력은 의사결정, 문제 해결, 미래 예측, 논리적 추론과 같은 고차원 인지 기능의 핵심이다. 그러나 뇌가 어떤 원리로 기억을 구분하고 전환하는지는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뇌 깊숙한 곳에 위치한 내측중격에 주목했다. 내측중격은 해마의 활동 리듬을 조절하며, 뇌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저장하고 불러올 수 있도록 돕는 ‘조율자’ 역할을 하는 영역이다.
연구 결과, 내측중격의 특정 신경세포가 기억 정보를 처리해 해마로 전달하는 뇌 영역인 내측내후각피질로 신호를 보낼 때 뇌는 최신 기억을 더 잘 떠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연구팀이 빛을 이용해 이 신경 회로를 인위적으로 차단하자 실험동물은 최신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고 과거 방식대로 행동했다. 기억 저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의 신경 활동 역시 과거 상태로 되돌아갔다. 이는 해당 회로가 여러 기억 가운데 현재 상황에 필요한 최신 정보를 선택하는 ‘신경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뇌의 활성 상태에 따른 기억 수행 능력도 함께 분석했다. 우리 뇌는 활발히 정보를 처리하는 ‘온라인 상태(세타파·학습과 집중 시 활성화되는 뇌파)’와 휴식 상태인 ‘오프라인 상태(델타파·수면이나 휴식 시 나타나는 느린 뇌파)’를 반복적으로 오간다.
분석 결과, 온라인 상태가 길게 유지될수록 최신 기억을 더 잘 떠올렸으며, 반대로 온라인·오프라인 상태 전환이 잦을수록 기억 인출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뇌의 특정 리듬과 상태가 효과적인 기억 인출을 결정하는 중요한 신경학적 지표임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뇌가 과거 기억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정보를 유연하게 반영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향후 치매·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환자의 기억력 감퇴와 인지 유연성 저하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치료 기술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진희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 뇌가 수많은 경험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고 활용하는 원리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며 “기존에는 기억 인출을 단순히 저장된 흔적을 재생하는 과정으로 이해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뇌가 경쟁하는 기억들 사이에서 최신 정보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조절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생명과학과 김무준 박사, 서보인 박사과정, 소선회 박사과정, 최정욱 박사과정, 황재민 박사과정, 박주희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참여했으며, 신경과학분야 최상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4월 29일자 게재했다.
※ 논문명: A septo-entorhinal GABAergic pathway that enables switching between episodic memories https://doi.org/10.1038/s41593-026-02280-6
※ 저자 정보: Mujun Kim(KAIST, 제1저자), Boin Suh(KAIST), Sunhoi So(KAIST), Jung Wook Choi(KAIST), Jaemin Hwang(KAIST), Juhee Park(KAIST) & Jin-Hee Han(KAIST, 교신저자)
이 연구는 중견연구과제(한국연구재단),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지원과 KAIST 장영실 펠로우십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다.
재생의료 패러다임 바꿀 3차원 줄기세포 배양 기술 제시
줄기세포를 많이 넣어도 몸속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기술이 나왔다. 줄기세포는 몸의 다양한 조직으로 자라거나 손상된 부위를 회복시키는 데 활용되는 세포로, 우리 대학 연구진이 세포 주변 환경을 정밀하게 설계한 3차원 배양 기술을 개발해 이 줄기세포의 생존력과 치료 효과를 동시에 크게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번 성과는 줄기세포 치료의 한계를 넘어, 재생의료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대학은 생명과학과 전상용 교수 연구팀이 줄기세포를 더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새로운 배양 기술을 개발했다고 29일 밝혔다. 연구팀은 세포가 실제 몸속처럼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인공 바닥(배양 기판)’에 고분자 매트릭스(배양 기판 표면을 코팅하는 인공 구조체)를 적용하고, 그 위에서 인간 지방유래 줄기세포(hADSCs, 지방 조직에서 얻는 줄기세포)를 입체적으로 배양하는 3차원 플랫폼을 구현했다. 그 결과, 기존보다 세포의 기능과 치료 효과가 획기적으로 향상된 것을 확인했다.
인간 지방유래 줄기세포는 채취가 쉽고 잘 증식하며 면역 거부 반응이 적어 치료용 세포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기존 2차원(2D, 평면) 배양 방식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세포가 늙고 기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세포를 덩어리 형태로 키우는 3차원(3D, 입체) 배양 기술이 연구돼 왔지만, 세포가 몸속에서 오래 살아남거나 기능을 유지하는 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록산(실리콘과 산소로 이루어진 생체친화적 고분자 물질)이 촘촘히 가교화된(그물처럼 단단히 연결된 구조) 합성 고분자 물질을 개발하고, 이를 ‘폴리-지(poly-Z)’로 명명했다.
이 물질은 배양 기판 표면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바꾸어서 세포 배양 배지(세포를 키우는 영양 용액)에 함유되어 있는 알부민 단백질의 흡착을 촉진하고, 그 결과로 세포들이 바닥에 부착되지 않고 자기조립을 통해 3차원의 스페로이드(세포 덩어리) 구조체를 형성하도록 한다.
폴리-지를 활용한 3차원 배양 환경에서 형성된 줄기세포 스페로이드는 세포외기질(세포 주변을 둘러싸며 지지하는 구조물)의 생성이 증가되어 실제 몸속과 유사한 환경이 조성되었고, 기존 방식보다 뛰어난 성능을 보였다.
실험 결과, 폴리-지 기반 3차원 배양 줄기세포는 다른 세포로 변할 수 있는 분화능력(필요한 조직으로 바뀌는 능력)과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능력이 향상됐으며, 체내에서 살아남는 시간도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급성 대장염과 급성 간손상 동물 모델에서도 기존 방식보다 더 우수한 치료 효과를 보였다. 이는 같은 양의 줄기세포를 투여하더라도 더 오래 살아남고 더 활발하게 작용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이번 기술이 단순히 세포를 덩어리로 만드는 것을 넘어, 세포 주변의 미세환경(세포가 실제 몸속에서 접하는 환경과 유사한 조건)을 풍부하게 조성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즉, 세포를 단순히 모아놓는 것이 아니라, 몸속과 비슷한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테그린(integrin, 세포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단백질)과 FAK 신호전달(세포가 외부 신호를 받아 내부 반응으로 바꾸는 과정)이 활성화되면서 줄기세포의 기능이 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포가 주변 환경을 더 잘 감지하고 활발하게 반응하면서 스스로의 기능을 더 잘 발휘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 결과, 체내 이식 후 세포의 생존율이 높아지고 치료 효과도 함께 향상됐다.
전상용 교수는 “이번 연구는 합성 고분자 기반의 정밀한 3차원 배양 환경을 통해 줄기세포의 기능과 치료 효능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과”라며 “염증성 질환을 비롯한 다양한 난치성 질환 치료를 위한 차세대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에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KAIST 이노코어(InnoCORE) AI-혁신신약연구단 서창진 박사가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Impact Factor: 14.1)' 3월 31일 字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 논문명: Polymer Matrix-Based 3D Culture Significantly Enhances the Differentiation and Immunomodulatory Functions of Human Adipose-Derived Stem Cells
※ https://doi.org/10.1002/advs.202518704.
한편 이번 연구는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 사업단의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 KAIST InnoCORE 프로그램, 한국연구재단의 리더연구사업(종양/염증 미세환경 표적 및 감응형 정밀 바이오-나노메디신 연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